한국일보

현명한 소비자가 되기 위한 노력

2018-06-02 (토) 한수민 국제 로타리 커뮤니케이션 스페셜리스트
작게 크게
나는 아직도 식탁에서 남은 밥을 잘 버리지 못한다. 아마도 어린 시절 “한 톨의 쌀이 농부 아저씨들의 피땀”이라든지 “굶어 죽어가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이리라. 물론 요즘 세상에는 쌀도 온갖 마케팅 전략에 의해 규격화되고 포장되어 판매되는 상품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쌀은 아무 부담 없이 버리게 되는 여느 상품과는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우리 세대의 정서가 아닐까.

나는 절약이 미덕인 시절에 태어나고 자랐지만 요즘은 소비가 미덕인 세상이다. 우리는 단 하루도 무엇인가를 소비하지 않고는 일상을 영위하기 어렵다. 의식주를 비롯한 필수품에서부터 편의를 위한 각종 서비스, 정보와 지식, 심지어 타인의 경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소비하고 또 소비한다. 나는 소비야 말로 현대인의 정체성이 되어 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소비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재화나 용역을 소모하는 일”이라고 나와 있다. 다시 ‘소모’라는 단어를 찾아보니 “있는 것을 써서 없앰’으로 되어 있다.
결국 소비는 재화나 용역을 써서 없애는 일이다. 여기에는 정서적 반응이나 성찰이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 안 그래도 바쁘고 스트레스 많은 21세기 신자본주의 세상이 아니던가.


하지만 아직도 구시대적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나는 다시 ‘뉴스를 소비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내가 한국에서 살았을 때만 해도 주요 뉴스 공급원은 아침저녁으로 배달되는 신문이었다. 물론 TV로도 뉴스를 볼 수가 있었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통 건당 1분을 넘지 않는 짤막한 보도에서 깊이 있는 기사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아침저녁 집으로 배달되는 신문을 집어 들고 잉크 냄새를 맡으며 신문을 읽을 때는 사뭇 진지하고 엄숙하기까지 했다. 신문은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었으며 오피니언 리더였다. 특히나 언론 탄압이 엄혹했던 시절이었으므로 행간에 감추어진 의미까지 유추해가며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하지만, 2018년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젊은 층은 더 이상 신문을 읽는 대신 인터넷 포털에서 마음에 드는 기사를 골라 소비한다. 동일한 사건을 다루는 수십, 수백 개의 뉴스가 올라와 있고 독자는 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제목을 골라 클릭하면 된다. 요즘은 소비자의 구미에 맞게 콘텐츠를 왜곡하거나 선정적인 제목을 뽑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짜 뉴스까지 돌아다니는 세상이다.

시대에 따라 뉴스의 유통방식이 달라졌으니(극단적인 비유일지 모르지만 각 언론사는 뉴스를 만들어 포탈에 납품하는 업자처럼 보인다) 뉴스가 그런 식으로 소비되는 행태 자체를 뭐라고 할 일은 아니지만, 이러다가는 언론의 ‘정론직필’이란 가치가 설자리가 없게 될까 걱정이다(옛날처럼 권력의 주먹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시장 논리에 의해 그리되는 것이 더 무섭다.

‘어버이 연합’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나이든 보수세력을 움직이게 하는 주요 동력 중 하나가 바로 단톡 방을 중심으로 떠도는 가짜 뉴스들이다. “우리의 피땀으로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놓았지만 사회로부터, 젊은 세대로부터 무시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가짜뉴스는 이들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준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공정무역 캠페인과 같은 재화의 소비에 대한 성찰이 일고 있듯이 이제는 어떤 형태로든지 올바른 정보/뉴스를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을 키우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얼마 전에 본 한 TV 프로그램에서 유시민 작가가 진짜 뉴스와 가짜 뉴스 구별방법을 소개하고 있어 반가웠다.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첫째, 텍스트를 누가 생산했나(주제와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사람이라면 객관적이기 어렵다) 둘째, 생산 동기는 무엇인가(이 사람이 결국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셋째, 사실에 근거한 것인가(주장에는 논거가 있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어떤 방식으로 썼나(독자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는가)로 요약될 것이다.

혹자는 먹고 살기도 바쁜 세상에 누가 그런 것까지 골치 아프게 생각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막말처럼 우리가 개돼지로 살지 않으려면 시민적 각성이 필요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현명한 소비자가 되기 위한 노력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노력이다.

<한수민 국제 로타리 커뮤니케이션 스페셜리스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