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연인 연쇄강도의 비극 다룬 흑백 명작

2018-06-01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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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 크레이지’ (Gun Crazy·1949)

▶ 팜므 파탈의 전형인 애니 역, 페기 커민스 압도하는 연기 일품

연인 연쇄강도의 비극 다룬 흑백 명작
조셉 루이스가 감독하고 당시 매카시즘의 희생자로서 블랙 리스트에 올라 있던 각본가 달턴 트럼보(‘로마의 휴일’의 각본)가 가명으로 각본을 쓴 소품 필름 느와르 걸작으로 섹스와 폭력이 절묘하게 뒤섞인 흑백 명품이다.

어렸을 때부터 총에 유난히 집념을 해온 바트(존 달)와 카니발에서 샤프 슈터로 일하는 요염한 애니(페기 커민스)가 첫 눈에 반해 연인이 되면서 은행과 회사의 경리실 등을 연쇄적으로 턴다. 둘은 천생연분으로 마치 총과 총알의 관계와도 같다. 이 과정에서 두 연인 강도는 살인을 저지르는데 바트는 살인을 꺼리는 반면 애니는 살인을 기꺼이 저지른다. 그리고 도주와 추격에 이어 둘은 처절한 비극적 종말을 맞는다.

폭력과 절망적 로맨스와 긴장감이 팽팽한 성적 분위기가 감도는 영화로 두 연인 강도의 행적이 마치 약물에 취한 사람들의 것처럼 몽환적인데 현장에서 찍은 촬영(‘앵무새를 죽여라’를 찍은 러셀 할란)과 즉흥적 대사 등으로 급박하고 절실하게 사실적이다. 음악은 ‘셰인’ 등 수 많은 할리웃 걸작의 음악을 작곡한 빅터 영이 작곡했다.


영화에서 화면을 압도하는 것이 웨일즈 태생의 커민스의 고혹적인 모습과 연기. 여고생처럼 순진한 얼굴을 한 커민스가 악에 받쳐 총으로 살인을 자행하는 모습이 가히 치명적이다. 필름 느와르의 필수적 인물인 팜므 파탈의 전형적 경우다.

허무하고 폭력의 카니발과도 같은 이 영화에서 권총은 남자의 성기를 상징한다. 애니가 도발적인 모습으로 6연발 권총을 한 손에 든 채 다른 한 손으로 잡은 호스로 자동차 연료통에 개스를 주입하는 장면은 남녀 간의 정열적인 성행위를 묘사한 것이다.

‘건 크레이지’는 프랑스의 뉴 웨이브에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장-뤽 고다르의 갱영화 ‘네 멋대로 해라’(Breathless·1960)도 이 영화의 영향을 받았다. (사진)

▲ ‘잃어버린 비행대대’(The Lost Squadron·1932): 1차 대전에 참전 후 제대해 영화의 스턴트 조종사로 일하는 파일롯들의 이야기. 에릭 본 스트로하임, 리처드 딕스, 메리 애스터 공연.

▲ ‘저주 받은 자’(Condemned·1929): 멋쟁이 도둑(로널드 콜맨)이 악명 높은 죄수들을 수감하는 ‘악마의 섬’에서 가학적인 교도소장의 아내(앤 하딩)와 로맨스를 꽃 피운다.

▲ ‘데블 투 페이!’(The Devil to Pay! ·1930): 로널드 콜맨과 로레타 영이 주연하는 코미디.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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