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 크레이지’ (Gun Crazy·1949)
▶ 팜므 파탈의 전형인 애니 역, 페기 커민스 압도하는 연기 일품
조셉 루이스가 감독하고 당시 매카시즘의 희생자로서 블랙 리스트에 올라 있던 각본가 달턴 트럼보(‘로마의 휴일’의 각본)가 가명으로 각본을 쓴 소품 필름 느와르 걸작으로 섹스와 폭력이 절묘하게 뒤섞인 흑백 명품이다.
어렸을 때부터 총에 유난히 집념을 해온 바트(존 달)와 카니발에서 샤프 슈터로 일하는 요염한 애니(페기 커민스)가 첫 눈에 반해 연인이 되면서 은행과 회사의 경리실 등을 연쇄적으로 턴다. 둘은 천생연분으로 마치 총과 총알의 관계와도 같다. 이 과정에서 두 연인 강도는 살인을 저지르는데 바트는 살인을 꺼리는 반면 애니는 살인을 기꺼이 저지른다. 그리고 도주와 추격에 이어 둘은 처절한 비극적 종말을 맞는다.
폭력과 절망적 로맨스와 긴장감이 팽팽한 성적 분위기가 감도는 영화로 두 연인 강도의 행적이 마치 약물에 취한 사람들의 것처럼 몽환적인데 현장에서 찍은 촬영(‘앵무새를 죽여라’를 찍은 러셀 할란)과 즉흥적 대사 등으로 급박하고 절실하게 사실적이다. 음악은 ‘셰인’ 등 수 많은 할리웃 걸작의 음악을 작곡한 빅터 영이 작곡했다.
영화에서 화면을 압도하는 것이 웨일즈 태생의 커민스의 고혹적인 모습과 연기. 여고생처럼 순진한 얼굴을 한 커민스가 악에 받쳐 총으로 살인을 자행하는 모습이 가히 치명적이다. 필름 느와르의 필수적 인물인 팜므 파탈의 전형적 경우다.
허무하고 폭력의 카니발과도 같은 이 영화에서 권총은 남자의 성기를 상징한다. 애니가 도발적인 모습으로 6연발 권총을 한 손에 든 채 다른 한 손으로 잡은 호스로 자동차 연료통에 개스를 주입하는 장면은 남녀 간의 정열적인 성행위를 묘사한 것이다.
‘건 크레이지’는 프랑스의 뉴 웨이브에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장-뤽 고다르의 갱영화 ‘네 멋대로 해라’(Breathless·1960)도 이 영화의 영향을 받았다. (사진)
▲ ‘잃어버린 비행대대’(The Lost Squadron·1932): 1차 대전에 참전 후 제대해 영화의 스턴트 조종사로 일하는 파일롯들의 이야기. 에릭 본 스트로하임, 리처드 딕스, 메리 애스터 공연.
▲ ‘저주 받은 자’(Condemned·1929): 멋쟁이 도둑(로널드 콜맨)이 악명 높은 죄수들을 수감하는 ‘악마의 섬’에서 가학적인 교도소장의 아내(앤 하딩)와 로맨스를 꽃 피운다.
▲ ‘데블 투 페이!’(The Devil to Pay! ·1930): 로널드 콜맨과 로레타 영이 주연하는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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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