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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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간 주행 덕에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변화 감상

2018-05-11 (금) 권태진/변호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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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태진의 시베리아 횡단열차 기행④

장시간 주행 덕에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변화 감상

레닌의 두상 앞에선 필자.

들판은 깨끗한 물과 풀이 많아 흰 소떼들도 모두 살쪄
열차 역 밖에는 소수민족 여인들이 노상에서 음식 팔아
지역에 따라 여름은 새벽 4시에 통트는 곳 있기도 해구입한

8월 8일
6일 아침 8시 25분 하바롭스크를 출발 거의 24시간이 지나 도착한 곳은 Yerofei Pavlovich 다. 나는 이미 아침 4시에 잠에서 깨어나니 먼동이 트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날씨가 맑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도 어두움이 깔려있었다. 모스크바보다 5시간 빠르고 모스크바까지 7,119km 떨어진 곳이다. 1600년경 이 곳을 탐험한 사람의 이름을 딴 이 작은 도시는 하바롭스크 행정구역에 속한 아직도 극동지방이다.

한때 열차를 쇠로 된 말 즉 철마라고 했던 것이 기억에 난다. 철마는 질주하지만 철마에 탄 나는 음산한 날씨 탓이라 밝은 아침의 기분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장시간의 주행이라 날씨와 자연의 경치변화가 시시각각 변화가 무상하다. 조금 지나니 안개가 걷히고 해가 찬란히 비친다. 서쪽으로 향하면서 선로 변은 작약나무와 소나무들이 줄을 이어 있다. 낮은 산들에도 작약나무의 흰 줄기의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드디어 작은 마을들이 자주 나오고 들판에 마른 풀들을 뭉치로 만들어 쌓아 놓았다. 겨울철 가축의 먹이로 이용하는 것들이다. 주택들이 미국주택과 비교할 때 규모가 훨씬 작은 편이다. 열차가 움직이는 동안 화물차와 석유탱크 선이 빈번히 지나가고 있다. 러시아는 세계 제2의 석유 보유국이며 시베리아는 석유의 보고다. 들판에 흰 소 떼들이 풀을 뜯고 있다. 수십 마리가 떼를 지은 것은 처음 보는 관경이다. 모두가 크고 살쪘다. 깨끗한 물이 많고 먹을 풀이 많으니 살이 찔 수밖에 없다. 2015년 볼리비아 고산지대에서 본 소들과 비교가 된다. 고산지대의 소와 양들이 볼품이 없이 여윈 것은 물과 풀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호수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가면서 살찐 소와 양들을 볼 수 있었다.
철마는 Yorofei Pavlovich를 출발 500km 이상을 달려와 현지시간 오후 6시 반에 Chernyshevsky란 역에 도착했다.

모스크바까지 6,593km 지점으로 30분 쉬는 역이다. 15분 이상을 쉬는 역은 전 구간을 통해 많지 않기 때문에 많은 승객들이 이때 열차에서 내린다. 15분의 정차는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우거나 바깥 공기를 마시며 스트레치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2-3분 정차 시에는 내리지 못하며 그곳에서 타는 승객을 위해 문을 연다.

30분을 쉬는 시간은 시베리아철로 전 구간에 몇 번에 불과하여 나도 음식을 구입하고 휴식겸 열차에서 내렸다. 내려서 음식을 사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은 먹을 것을 미리 준비해서 여행하는 승객들이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울란우데에서 이르쿠츠크로 가는 3등 실에서 내 앞 여자 승객이 아이스박스에 많은 음식을 준비해와 수시로 가족과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을 보았다.

열차 역 옆에 소수민족 여인들이 음식을 땅바닥에 놓고 팔고 있었다. 빵, 삶은 닭 가슴, 오이 등 몇 가지를 사들고 열차로 향하는데 승무원이 손짓을 하며 빨리 오라고 한다. 방으로 들어가 보니 지금까지 비어왔던 침대에 탈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큰 체격의 50-60대로 보이는 러시아 남자다. 인사도 없이 무표정으로 서 있는 그에게 영어로 인사를 해 보았지만 대답이 없다. 열차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상대방에게 최소 인사는 해야겠기에 아이 폰을 꺼내서 동시번역으로 뉴욕에서 왔으며 울란우데까지 간다고 적었더니 알겠다는 듯 고개만 끄덕인다.

밖에서 사온 음식으로 간단히 저녁을 치루고 창가를 내려다보면서 늦은 오후 아름다운 시베리아 들판의 광경을 목격한다. 밤 8시가 되었어도 해가 서산으로 향하지 않았다. 시베리아의 여름은 지역에 따라 새벽 4시에서 6시 사이에 동이 트고 저녁 11시 가까이까지 해가 있는 곳이 있다. 저녁 8시 시베리아 벌판이 햇볕으로 빛나고 있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 그리고 조금 지나면 넓은 강 또 푸른 야산이 한 폭의 그림이다. 그리고 잡초와 야생화가 가득한 들판이 마치 곡식이 무루 익는 들판처럼 황금색이다. 열차 선로 변에도 각종의 야생화가 피어서 수놓고 있다. 낮은 산위에는 뭉게구름이 떠돌고 있어 시인이라면 시상이 떠오를 만도 하다.

8월8일
저녁 일찍 침대에 누워 7시간 가까이 자고 나니 기분이 좋았다. 밖을 보니 열차가 잠시 섰다가 다시 출발하고 있다. Petrovk-Zabaykalsky역은 모스크바까지 5,784 km떨어진 곳으로 하바롭스크에 출발 거의 50시간을 달려온 시간이다. 다음 행선지 울란우데까지는 약 3시간 정도 주행거리다. 아이폰은 아침 5시 15분을 가르키고 있다. 아이폰은 열차가 움직임에 따라 자동적으로 현지 시간으로 바뀌기 때문에 현지 시간을 알기에 편리하다. 하바롭스크 시간으로 되어 있는 내 손목시계는 아침 7시 15분으로 열차가 지나가는 지역보다 2시간이 빠른 시간이다.

커튼을 열고 차창 밖을 보니 아직도 어둡다. 러시아 제 2도시인 세인트 피터스버그는 7월에는 아침 4시 40분경에 해가 뜨고 밤 11시가 지나야 해가 진다. 반대로 1월에는 아침 11시가 지나야 해가 뜨고 오후 5시 조금 지나면 해가 진다.


복도로 나가 간단히 스트레치를 한 후 차량과 차량사이 난간으로 나갔다. 집에 있을 때는 기도를 게을리 하다가 이번 여행 중에는 매일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발행인으로 있는 ‘빛과사랑’과 또 이 신앙지를 위해 애쓰는 편집인과 편집위원들과 그들 가정을 위한 기도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후임 발행인을 위하여도 기도했다. 30분정도의 기도가 끝나고 방으로 들어와 음식 봉지를 가지고 복도로 나왔다. 함께 자는 사람을 위해 전등을 켜지 않고 복도로 나와서 역에서

구입한 음식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차장이 있는 방으로 가서 티백 하나와 물 한 병을 샀다. 여행이 시작되기 전 러시아태생 유대인 여자가 시베리아열차승무원에 대한 평 보다는 승무원들이 친절하고 순수한 것 같다. 물론 말이 통하지 않아 다소 갑갑한 경우가 많았지만.

아침 6시가 지났는데 아직도 사방이 어두운 것은 짙은 안개 때문이다. 안개 속에서도 들판을 보면서 선로 변 가까이에 있는 마을을 지나간다. 다음 행선지까지는 몇 시간 남지 않은 것 같으나 정확히 알려면 통로에 붙어있는 도착시간표를 보아야 할 것 같다. 횡단열차내에 있는 시간표는 정차하는 도시 이름과 도착시간 정차시간 모스크바까지 거리가 표시되어 있다. 여행 시 이것을 보면 지금 어디에 얼마의 거리에 와 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열차표에 나타난 시간도 모스크바 시간이며 통로 벽에 붙어있는 시간표와 통로천정에 걸려있는 전자시계도 모스크바 시간인 것을 알아야한다. 따라서 지역 간의 시간 격차를 잘 알아두어야 현지시간을 파악할 수 있다. 다행이도 휴대전화기에 나타나는 시간은 현지 시간을 표시하기 때문에 여행자들이 전화기를 소유하면 큰 도움이 된다. 긴 시간에 시간을 매우기 위해 책이나 기타 소일거리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나에게는 랩탑이 나의 길고 지루한 여행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어느 역인지는 알 수 없으나 열차가 멈추어 시계를 보니 현지시간 오전 7시 5분이었다. 2-3분 정차하고 열차가 다시 서서히 움직인다. 창문 밖으로 보는 전경은 짖은 안개에 철로를 끼끼고 강물이 조용히 흐르는 것을 본다. 겨울에 시베리아열차 여행은 지루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보이는 것은 눈과 얼은 들판밖에 보이지 않으며 더욱이 해가 짧아 밤이 길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름에는 밤도 짧고 반대로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할 수 있지만 비가 오거나 안개가 덮인 들판을 볼 때도 적지 않다. 열차가 출발했는데도 동승하는 사람은 아직도 잠에 떨어져 있다. 열차 여행객들은 비교적 많은 잠을 자는 것 같다. 긴 여행에 지루하기 때문에 잠으로 시간을 채우는 것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롭스크까지 한방에 있었던 3명의 승객도 모두가 긴 잠을 자는 것 같았다.
<계속>

<권태진/변호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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