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문재인 대통령에 바란다

2018-04-25 (수)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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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남북 정상회담이 이틀 후로 다가왔다. 남북정상 환영만찬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신안 가거도의 민어와 해삼초를 이용한 ‘민어해삼편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 김해 봉하마을에서 오리농법 쌀로 지은 밥, 문재인 대통령의 대표적인 고향음식인 생선 ‘달고기 구이’가 등장한다고 한다. 더욱이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 만찬 음식으로 옥류관 평양냉면이 좋겠다고 북측에 제안했고 북측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 옥류관의 수석 요리사를 회담장에 파견하리라고 한다.

기가 막힌 아이디어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만찬은 회담의 하나의 의식에 불과하다. 청와대가 남북회담을 둘러싸고 지나치게 보여주기식의 화해무드 조성에 치우쳐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남북회담의 핵심은 무엇인가. 비핵화와 핵 폐기다. 북미회담에서도 비핵화가 합의주제다. 백악관의 마크 쇼트 의회담당 수석보좌관은 엊그제 NBC 방송의 ‘Meet The Press’에서 ‘미국이 생각하는 비핵화는 무엇인가’라는 사회자 척 토트의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생각하는 비핵화는 북한이 핵무기를 더 이상 보유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명확히 밝혔다.


김정은이 노동당 제7기 의정보고에서 발표한 선언에는 핵실험과 대륙간 탄도미사일 실험중지와 함북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한다고만 되어있지 ‘비핵화’나 ‘핵 폐기’란 말은 한마디도 없다. 이것은 핵은 보유하되 절대 사용하지 않겠다는 핵보유국 선언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주 언론사 사장단 오찬에서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김정은을 보는 시각이 미국에 비해 너무 부드러운 것이 아닌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번 남북회담에서 정전협정이 선언될 모양인데 핵 폐기 없는 정전협정은 한국의 입장에서는 치욕적인 평화협정이다. 앞으로 북한의 눈치를 보고 굽신거리며 지내야하는 평화다. 남북경제교류가 재개되고 이산가족 재회가 열릴지도 모른다.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온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것은 영원한 평화가 아니다. 왜냐하면 북한의 목표가 통일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남북회담의 부드러운 분위기 조성에만 힘쓸 일이 아니다. 잘못하면 남북정상회담이 북한의 핵보유국 선언을 인정해주는 지상 최대의 쇼에 불과했다는 역사적인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19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을 이뤄냈을 때도 남한에서는 통일 분위기로 들떴는데 다시 긴장상태로 되돌아갔고, 북한은 2005년 9·19 공동성명과 2007년 2·13 합의로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는 등 비핵화 의지를 과시했지만 이 모든 것은 쇼로 판명됐다.

한두번 속은 것이 아니다. 몇 년씩 걸리는 비핵화는 북한의 속임수에 불과하다. 서로 좋은 이야기만 하다가 헤어지는 남북회담이 되어서는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핵 폐기 날짜를 못 박도록 하는 게 미국의 목표”라고 말하고 있다. 김정은이 이런 요구를 회피하고 말을 돌리면 트럼프는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미국의 이 같은 자세는 북미회담의 정답이라고 본다.

미국의 동의 없는 한반도 정전선언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남북회담과 북미회담은 같은 연결선상에 있다.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은 회담 막판에 독한 마음먹고 김정은에게 “언제까지 핵 폐기를 하겠느냐”는 날짜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재인 정부 집권시절에만 유지되는 한반도 평화에 동의하는 모양새가 될 것이며 이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보여준 실책을 재상영하는 비디오 효과에 불과하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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