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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남자들은 페미니즘을 증오하나

2018-04-23 (월) 김성준 콜로라도대 정치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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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준 콜로라도대 정치학 박사과정

왜 한국의 젊은 남자들은 페미니즘을 증오할까? 이들은 그동안 남성으로서 기대할 수 있었던 많은 것들이 더 이상 자신들에게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한국에서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는 일이나 결혼상대를 만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보통의’ 남자라면 아내보다 많은 돈을 벌면서 당당하게 가정을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고정된 성역할 강요는 여전한데, 그걸 실현하기 위해서는 점점 더 ‘비범한’ 능력이 필요해지고 있다. 따라서 구직시장이나 구혼시장에서 웬만한 젊은 남성들은 낙오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감의 지배받을 수 있다는 건, 충분히 예상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페미니즘은 남성에게도 필요하다. 남성 역시 고정된 성역할을 강요하는 구조의 또 다른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연봉을 넉넉하게 잘 주는 정규직 일자리를 얻어서 아내와 자식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소위 ‘평범한’ 삶의 모델은 더 이상 어떤 남자를 위해서도 잘 작동하지 않는다. 성차별을 폐지하면 그러한 모델에 부합하지 않는 삶을 산다고 해서 더 이상 열등감을 느낄 이유도 없고 느낄 필요도 없다.


그러나 한국 남성들은 자신들에게 과도한 역할을 부여하는 가부장제적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사회구조가 변화될 수 있다는 걸 상상하기 힘들어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체제에 대항하여 변화를 요구하는 대신에, 아예 여성들과 자원을 나누는 것을 거부하는 게 더 쉬운 길이라고 여긴다. 이 때문에 그들은 안티 페미니즘이라는 노선을 택한다.

한국사회에서 발생하는 ‘안티페미니즘’이나 미국과 유럽에서 부상하고 있는 극우 포퓰리스트들이나 동일한 약자집단 혐오 논리에 기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이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더 이상 주도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 이유를, 신자유주의적 개혁 같은 구조적 변화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사회적 약자(여성이나 이민자, 소수인종 등)에게서 찾고, 그들에게 분풀이를 하고자 하는 것은 전형적인 극우적 혐오 논리다.

극우 포퓰리스트 세력이 단순히 해묵은 인종차별 발언이나 여성혐오 발언을 반복하는 것을 넘어, 시민적 자유나 인권, 법치, 평등 같은 민주주의적 가치마저 경멸하고 부정한다는 사실에 특별히 주목하고 싶다. 이는 여성이나 사회적 약자를 위한 그 나마의 제도적, 정책적 마지노선 역시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왜 남성들은 낙오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사회변혁이나 진보를 향한 요구로 발전시키지 못할까? 많은 남자들은 ‘고용 없는 성장’ 및 ‘모든 일자리의 비정규직화’, ‘유연한 착취’ 등을 기조로 하는 오늘날의 경제구조를 변화시키는 게 가능하지 않다고 여긴다.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경제를 조직화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못하다보니, 여성들에게 원한을 표현하는 남자들이 늘고 있다. 남자들에게 적합한 정규직 일자리를 여성들이 다 가져가 버렸으니, 여성들에게 책임을 지라는 논리이다. 정작 고용을 줄이고 정규직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기업주에게는 아무것도 따지지 않는다.

남자들은 이제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여성을 학교와 구직시장에서 몽땅 몰아내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과거의 소위 ‘좋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안티페미니즘의 부상을 보면서 조만간 한국에서도 올트-라이트 같은 극우 포퓰리스트 세력이 득세하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지금 시급한 것은 한국의 젊은 남자들의 두려움과 불안감을 사회변혁을 향한 요구로 전환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언어다.

<김성준 콜로라도대 정치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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