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100세 시대의 바람직한 노인

2018-04-11 (수)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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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가 싯다르타의 왕자 시절 하인을 데리고 성의 동문을 나서는데 주름투성이의 백발노인이 꾸부정한 자세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떠들었다. 붓다는 하인에게 “저 사람 왜 저러지?”하고 물으니까 하인은 “사람이 늙어 노인이 되면 다 저렇게 되는 법입니다”라고 설명했다. 붓다는 “아, 지금의 내 안에 미래의 노인이 살고 있도다. 인간은 젊음에 취해 자만심으로 늙음을 보지 못하는구나. 놀이고 뭐고 다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자” 라며 궁궐로 돌아왔다.

이것이 이른바 석가모니가 성의 네 개의 문을 드나들면서 노인들의 병사고락을 보고 자신의 운명을 깨우쳤다는 ‘사문유관’의 전설이다.

인간은 반드시 늙는다. 그리고 죽는다. 이것은 진리인데도 미리 내다보지 못한다. 사람들은 노인이 되는 것과 죽는 것은 자신과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여성들 중에는 70세가 넘었는데도 자신은 노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늙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 하는가. 신체적 정신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뜻한다. 신체적인 변화가 일어나 남들은 나를 노인이라고 생각하는데도 자신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사람이라고 착각한다.

100세 시대가 열렸다. 60세에 퇴직한다면 앞으로 40년을 더 살아야 한다. 너도 나도 건강하기 위해 별별 비타민을 먹고 운동하는 것이 삶의 조건처럼 번지고 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삶의 가치를 채워주는 시간의 의미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오래 사는 것이 정말 좋은 것일까.

엊그제 한국 EBS-TV의 다큐프라임이라는 프로에서 ‘100세 시대의 불안’에 대해 특집방영을 했는데 100세 또는 100세 가까이 된 노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생생하게 현장취재 보도한 내용이다. 영화배우 최불암의 사회로 진행된 이 프로를 보고나면 “100세까지 산다는 것이 과연 행복한 삶인가”하는 생각이 든다. 적당한 경제력과 건강이 받쳐주지 않으면 100세를 산다는 것이 악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 경제사정이 어려워 비참한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101세 된 어떤 할머니는 “이건 사는 게 아니여. 죽었으면 좋겠는데 죽어지지도 않고...“ 하며 긴 한숨을 내쉬는데 남의 일 같지 않아 소름이 끼쳤다.

그럼 돈 있고 건강하면 노년이 행복한가. 그것도 아니다. MB(이명박 전 대통령)를 보라. 그는 돈 있고 건강한 노인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풍비박산이나 가장 비참한 인생 보내고 있다. 부와 권력의 정점에 있던 사람들이 몰락하면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박근혜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프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노인은 경북 어느 시골의 중학교 재단 이사장이었는데 그는 매일 학교 운동장을 청소하고 학생들을 도와줘 교사와 학생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는 노년생활이 이렇게 의미있는 줄 몰랐다며 “사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그는 상대를 자기 기준에 맞춰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몸을 낮추어 행동으로 시범을 보였기 때문에 노인이 아니라 어르신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다.

결국 ‘100세 시대의 불안’이라는 이 프로그램을 보고난 후 느낀 것은 건강하고 친구 많고 존경받는 노인이 100세 시대의 가장 바람직한 노인이라는 결론이다. 노년의 아름다움은 용모도 아니고 부도 아니다. 얼굴의 주름보다 마음의 주름을 펴는 사람이 행복한 노인이다. 노인의 존재 가치는 그가 얼마나 가졌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이루어진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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