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럼프와 볼턴, 그리고 매티스…

2018-03-29 (목) 12:00:00 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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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백악관 안보사령탑 존 볼턴의 이름 앞에 가장 흔하게 붙는 형용사는 ‘위험한(dangerous)’일 것이다. 미국의 대북 초강경론자 1위에 올린다 해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그는 남북 정상회담이 무르익어가는 와중인 한 달 전까지도 대북 선제공격의 ‘완벽한 합법성’을 역설했으며, 이란과는 핵협상이 아니라 폭격과 정권교체만이 유일한 옵션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황당한 트윗 해고로 백악관 물갈이를 계속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엔 미국뿐이 아니라 전 세계를 두렵게 하는 또 하나 폭탄을 던졌다. 지난주 새 국가안보보좌관에 볼턴을 임명, ‘화염과 분노’로 북한을 위협했던 대통령이 자신의 위험한 충동을 견제하기는커녕 한층 부추길 호전적 수퍼 매파를 대북협상의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을 앞둔 김정은의 전격 중국방문의 배경에도 ‘위험한’ 볼턴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볼턴을 앞세운 미국의 압박에 중국을 안전망으로 확보하려는 김정은의 전략이 초록열차가 대륙을 가로질러 달린 요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다. 하긴 볼턴 임명에 대한 월스트릿저널 사설도 “북한은 이제, 미국에 대한 엄포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22일 늦은 오후 볼턴 임명 발표와 함께 찬반논란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당장 전쟁발발의 벼랑 끝으로 몰리는 듯한 위험 경고와 ‘적시에 적임자…트럼프의 스마트한 선택’이라는 상반된 평가가 미디어를 도배했다.

도대체 볼턴이 누구이길래…무엇을 얼마나 두려워해야 하는가…대통령 참모 하나 교체에 이처럼 온 세상이 촉각을 곤두세운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일단 그에 대한 ‘오해’는 드물다. 워낙 호·불호가 선명한 데다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놓기 때문이다.

레이건과 두 부시 대통령 행정부에서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과 유엔대사 등을 역임한 30년 공직생활 내내 볼턴은 ‘외교’를 불신하고 군사적 해결을 선호해 왔다. 특히 이란 및 북한과의 전쟁을 주창해왔고, 유엔을 혐오하고 국제법을 경멸했으며 자신이 깊게 관여한 2003년의 이라크 침공은 아직도 옳았다고 믿는다. ‘위험한 전쟁광’이라는 오명을 안긴 그의 호전성은 지지자들도 부인하지 못하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10대 시절부터 보수주의에 탐닉했던 그는 스마트하고 국제사회에 대해 박식하며 행정조직에 대해서도 노련하다. 개인적으로도 공격적인 그는 국무부 시절 ‘불편한’ 정보는 공개를 거부하는 정보왜곡 습성을 지닌 ‘불리’로 평판이 너무 나빠 공화당 주도 상원에서 유엔대사 비준을 못 받을 정도였다.

결국 아들 부시 대통령이 상원 휴회 중 임명이라는 편법으로 잠정적 대사직을 수행하다 16개월 단명으로 마감해야 했다. 유엔 사무총장 및 각국대사들과 불화를 빚으며 별 성과를 못 남긴, ‘유엔을 경멸한 유엔대사’가 트럼프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 그의 마지막 공직이었다.

볼턴 자신은 스스로를 경직된 이념주의자가 아닌 “미 국익을 위해선 기꺼이 외교적 수단을 사용하는 거침없는 실용주의자”로 생각한다. 볼턴에 대한 기록을 분석한 시사지 애틀랜틱은 “그의 실용주의가 성공을 거둘 경우 트럼프 백악관을 보다 일관되고 건설적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신중한 낙관론도 제시했다.


‘위험한 인물’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대북협상에서 미국의 지렛대가 될 수 있다고 인정한 애틀랜틱은 트럼프의 선택이 성공적이 되려면 “볼턴은 외부의 적들에겐 자신이 위험한 인물임을 각인시키고 막후에선 인내심을 발휘하며 영악해질 필요가 있다”고도 지적했다.

볼턴의 강경한 안보 신념은 오랜 기간 외길을 걸어왔지만 위험 경고엔 아직은 찬반양론이 대립할 여지가 있다. 지금까진 극단적 호전성을 실행에 옮길 파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가 설 자리는 자신 못지않게 호전적이며 충동적인 대통령의 가장 측근에서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 방향을 정해가는 사령탑이다.

북한과 이란을 비롯한 세계 어디에선가 문제가 터질 때마다 미국의 안보수장이 전쟁카드부터 꺼내 들까봐 세계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무력만이 국제체제에서 미국의 압도적 우위를 확보시킬 수 있으며…(유엔을 통한) 외교와 협상은 강력한 국가들의 손을 묶으려는 약한 국가들의 술수에 불과하다”는 그의 반복된 주장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두 주전 임명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 더해 볼턴 기용으로 출범 채비를 마친 트럼프의 강경 외교안보라인은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한다. 국제정책에서 위험과 모험의 새로운 요소가 밀려들면서 전쟁의 북소리가 들리는 듯 우방을 두렵게 한다.

마지막 보루는 남아있다. 아직은 트럼프의 신임과 여론의 신뢰를 잃지 않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다. ‘미친개’란 별명을 가진 그는 군사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결코 ‘비둘기파’인 적이 없었던 해병대 야전사령관으로 4성 장군 출신이다. 그러나 이젠 불같은 대통령의 호전적 안보팀에서 이성적 견제역할을 담당해야 할 유일한 비둘기가 되었다.

볼턴 기용을 반대했다는 그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요즘 워싱턴의 단골 화두 중 하나다. MSNBC에 출연한 전 나토 연합사령관은 기도하듯 말했다 - “매티스까지 잃는다면…신이여 우릴 도우소서!” 수백만 민간인 희생 예상은 아랑곳없이 한반도 전쟁 불사를 외쳐온 볼턴의 주장을 들을 때마다 섬뜩해졌던 우리도 해야 할 기도다.

<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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