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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완서씨 장녀 호원숙씨 ‘엄마와 함께한 삶’ 독자들에게 피력

2018-03-09 (금)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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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는 어딘가 신비스러웠으며 특별했다’

고 박완서씨 장녀 호원숙씨  ‘엄마와 함께한 삶’ 독자들에게 피력
고 박완서씨의 장녀 호원숙씨가 ‘엄마와 함께한 삶, 문학 그리고 신앙이란’ 주제로 3월 1, 2일 양일간 천주교 산호세 한국 순교자 성당에서 강의했다.

1일 오전 독서관을 가득 메운 가운데 열린 첫 날 순서에서 호원숙씨는 박완서씨의 모습이 담긴 슬라이더 등을 펼쳐보이며 어머니의 생전의 모습을 담담히 상기했으며 평생을 통해 인간 박완서가 미친 삶과 문학에 대한 의견을 독자들에게 피력했다.

호원숙씨는 이날 한국 문단의 거목 박완서를 어머니로 둔 문학인으로서의, 어머니란 존재가 자신에게 안겨 주었던 부담감 등을 토로하고 “그러나 어머니의 나무에 가려서 죽은 것이 아니라 사실은 어머니의 나무 사이를 걸으며 성장했음을 깨달았다”며 “그것은 특히 신앙을 가지면서 더욱 명확히 발견하게 됐다”고 술회했다.


약 2시간 가량 진행된 이날 강의에서 호원숙씨는 어머니의 젊은 시절의 모습과 자신의 문학과 인격 성장의 배경이 되었던 옛 집 등을 상기하며 “박완서의 가정은 남다른 빛이 가득 비쳐지는 것 같은 행복했던 가정이었다”고 추억했다.

호씨는 또 어머니 박완서씨가 여성동아 공모에 ‘나목’에 당선되었을 당시를 회상하고 자신들의 어머니인줄만 알았던 박완서가 내면을 가지고 있었던 한 인격체였음을 발견했을 당시의 전율도 고백했다.

호원숙씨는 전 시간을 통해 어머니를 상실한 아픔 그리고 문학인으로서 어머니를 자신들의 품안에서부터 세상으로 내보내야했을 당시의 아픔 등을 상세히 술회했으며 ‘나목’ 당선 직후 “어머니는 이를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마치 어머니 스스로 이미 잠재하는 문학적 재능을 인식하고 있었던 듯한 느낌을 받았다”며 “문학인으로서의 박완서는 당당하고 예지에 차 있었으며 어머니로서의 박완서는 자식들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멋있는 어머니였다”고 회상했다.

호씨는 어머니의 작품 중 최고의 작품 중의 하나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꼽는다며 이는 어머니가 남동생을 읽은 뒤 그 슬픔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작품으로서, 이 작품을 통해서 비로소 어머니로서의 박완서를 넘어서 문학인으로서 박완서를 재발견하게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어머니의 작품을 감탄했었으나 공감하지 못했지만 ‘그 많던 싱아’ 이후 인간 박완서의 아픔과 문학적인 깊이 그리고 자신은 도저히 따를 수 없는 거목 박완서를 알게 됐다는 호씨는 크고 화려한 것 보다 작고 소박한 것에도 늘 한결같았던 박완서의 인간성과 문학인으로서 결코 기 죽지 않았던 박완서의 당당함 등을 회상하며 강의를 마쳤다.

호씨는 이후 독자들과의 만남의 시간에도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모습은 아름답고 특별했으며 마치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 것 같아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길을 걸었던 모습을 상기하며 때론 신비감까지 느껴졌던 어머니는 검약했지만 늘 정신적인 가치를 최고로 추구하는 창의적인 인격이었다고 회고했다.

“요리와 뜨개질은 어머니가 생전에 즐겨 하던 모습이었고 그것은 다른 주부들과도 별반 다른 것은 아니었지만 그 모습은 어딘가 남달랐고 작은 것을 통해서 조차 늘 우리 가정을 특별하고 밝게 해 주었으며 어머니와 함께 꽃을 가꾸었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는 호씨는 어머니를 지근거리에서 관찰하고 배우며 살아온 것에 스스로 감사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자료를 정리하고 출판하는 일련의 작업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한다”며 소망이 있다면 “1954년부터 1970년까지 어머니가 작가로 나오기 이전의 기억을 쓰는 것이 문학인으로서의 포부”라고 밝히기도 했다.

작가이기도 한 호원숙씨는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 등의 산문집을 남기기도 했다. 고 박완서씨는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 된 이후 작가로 활동하다 2011년 향년 80세로 별세했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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