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럼프는 댐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2018-02-19 (월)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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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댐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도널드 트럼프는 우리에게 댐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교량이나 도로, 하수시스템 역시 건설하지 않는다. 기반시설이라고 말할 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다른 모든 것들도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1조5,000억 달러 규모의 기반시설 사업을 이미 발표한 마당에 어떻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

간단하다. 이건 진짜 계획이 아니라 사기이기 때문이다.


1조5,000억달러는 날조된 수치에 불과하다. 그는 단지 2,000억달러의 연방지출을 제안하고 있을 뿐이다. 2,000억달러가 마술이라도 부리듯 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들, 혹은 민간부문을 부추겨 엄청난 기반시설 투자를 하도록 유도할 것이라는 추정일 뿐이다.(그렇다고 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현재 돈을 쌓아놓고 있는 것도 물론 아니다.)

심지어 2,000억 달러에 달하는 연방지출 자체도 사기성이 농후하다.

같은 날 발표된 행정부 예산안은 빈민층 지원 대폭 축소만이 아니라 교통부, 에너지부를 비롯, 기반 시설투자 계획에 개입해야 할 기관들과 부처들의 예산에도 심한 칼질을 가했다.

현실적으로 트럼프의 기반시설 계획은 아무것도 아닌 뻥(nothing)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그의 플랜이 완전한 빈껍데기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행정부가 발표한 계획안에는 “주 정부, 지방자치단체 혹은 민간업체들이 관리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라 판단되는 연방소유 자산의 경우 매각을 허용한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이는 “가능하면 우리는 모든 연방자산을 민영화할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민영화 구상은 실제로 민간부문이 훨씬 효율적으로 자산을 관리할 수 있고, 정실주의 개입 없이 연방정부 자산의 양도 계약이 공정하게 이루어져야만 가능하다.

이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자는 돈을 주고 살 수 있다는 트럼프 대학의 학위 소지자뿐일 것이다. 한 가지 면에서 이는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현재의 기반시설 플랜은 트럼프가 2016년 대선전 당시 내놓은 엉성한 제안과 비슷해 보인다. 그 때만 해도 트럼프는 자신이 다른 종류의 공화당원임을 저처하며 당의 경제정책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에도 트럼프는 싼 값에 기반시설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상대적으로 얼마 안 되는 연방지출을 통해 대규모 투자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이번과 비슷한 논리였다.(이전에 비해 불가사의한 투자 뻥튀기 규모는 커졌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거의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인프라 계획을 들고 나온 트럼프의 실착은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든다. 트럼프 자신은 프로그램을 통해 중요한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먼저 경제적 이점부터 살펴보자.

미국은 점차 망가져가는 도로, 수자원시스템, 전력망 등을 반드시 수리하고 개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미국 경제는 공적 투자를 통해 실업자들을 노동일선으로 복귀시켜야 할만큼 침체되어 있지 않다. 대규모 인프라 지출은 지금보다 5년 전에 나왔으면 훨씬 좋았을 아이디어이긴 하지만 지금도 기반시설 개축과 확충은 필요하다.

그러면 인프라 재원은 어디서 나올까?

우리가 이미 보았듯 공화당은 백악관이 민주당의 수중에 놓여 있지 않은 한 예산적자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처럼 재정적자 확대를 개의치 않는다면 돈이 필요할 때마다 차입을 하면 그만이다.

이자율이 약간 오르긴 했어도 연방정부는 싸게 돈을 빌릴 수 있다: 인플레로부터 보호를 받는 장기채권의 이자율은 아직도 1% 미만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제시한 환상적 경제 성장률인 3%는 고사하고 실질적인 장기경제 성장전망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따라서 필수적인 인프라 구축의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지금 차입을 하는 것은 경제학적 견지에서 그리 나쁘지 않을 성 싶다.

앞서 말했듯 정치적 이점도 존재한다.

전통적인 공공투자 계획을 그대로 밀어붙일 경우 트럼프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입된 재취업인력을 대대적으로 떠벌릴 수 있다. 게다가 그는 상당수의 신규 프로젝트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역사적으로 많은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대규모 건축물을 세우려드는 이른바 거대건축지향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분명 트럼프도 일부 전임자들 못지않게 광내기 사업을 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런데 일부 민주당원들은 트럼프가 실제로 기반시설에 대규모 투자를 함으로써 민주당 진영을 분열시키고 광범위한 대중적 인기를 누릴 가능성을 두려워한다.

또 한 가지가 있다. 공공지출은 상당한 사적 이윤을 발생시킬 수 있다. 막대한 공공자금이 투여되는 기반시설 프로그램을 통해 트럼프 하수인들, 혹은 트럼프자신도 막대한 이윤을 챙길 수 있다. 물론 이런 사사로운 잿밥 챙기기를 막기 위한 룰이 존재하지만 현재와 같은 관리체제 아래서 그런 규정들이 제대로 집행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면 트럼프가 무언가 현실적인 제안을 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도대체 모두가 아는 뒤죽박죽 제안이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할 것일라 단언하는 이유는 무얼까?

실제로 트럼프가 항상 공화당의 정책을 좇는다는 것이 부분적인 대답이다. 요즘의 공화당은 정부가 하는 일을 통해 국민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싫어한다.

그러나 나는 트럼프가 혹시 무언가 중요한 일을 시도하기를 꺼려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한다.

공공투자를 성공적으로 하려면 지도력과 전문가들의 조언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 행정부는 그 어떤 분야에 관해서건 전문적 식견을 갖고 있지 않다. 전문가들은 사람들에게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일들에 관해 말해주는 나쁜 버릇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충성심까지 의심을 받는다: 언제 갑자기 직업윤리를 들고 나올지 모른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는 제 아무리 원해도 진짜 기반시설 플랜을 세울 수 없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우지 못한 이유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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