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카의 현주소

2018-02-08 (목) 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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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정부 셧다운과 맞물려 롤러코스터를 타던 드리머들의 앞날이 다시 안개에 휩싸였다. 지난달 사흘간의 정부폐쇄를 초래한 임시예산안 부결의 요인이었던 불체청년 추방유예 프로그램, 다카(DACA)가, 8일 자정 시한을 앞두고 숨 가쁘게 진행된 2월 예산안 협상에선 자취를 감추었다.

이번 연방 예산안은 의회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화당 표만으로 6일 통과된 하원안엔 물론이고, 8일 최종표결에 부쳐질 초당적 상원안에도 드리머의 운명을 좌우할 다카는 없다.

민주·공화 양당 지도부가 단기를 넘어 장기 예산안 처리까지 극적 합의를 이루었으니(양원 절충안 하원 통과의 열쇠를 쥔 하원 민주의원 상당수가 7일 오후 현재 여전히 다카 포함을 요구하고 있으나 1월에 비해 “셧다운은 다카 해법이 못 된다”는 공감대가 더 커진 듯 보인다) 셧다운 위기는 해소된 셈이다. 그러나 지난 9월 트럼프의 다카 폐지 발표 이후 절망과 희망을 오가던 드리머들의 앞날은 어떤 예측도 하기 힘든 불투명한 상태다.


그렇다고 다카 포기는 물론 아니다. 공화당의 주도권이 51 대 49로 허약한 상원에서 60표 찬성이 필요한 예산안 통과에 결정적 영향력을 가진 민주당의 굴복이 아닌 작전상 후퇴다. 지난 1월 셧다운 종료에 동의하면서 공화당 대표 미치 매코널로 부터 받아낸 약속이 그 전제다. 당시 매코널은 2월8일까지 초당적 이민합의가 타결되지 못하면 셧다운 위기를 넘긴 후 상원 본회의에서 이민에 대한 포괄적인 토론을 약속한 바 있다.

그리고, 약속대로 다음 주부터 상원에선 이민관련 ‘자유 공개 토론’이 시작될 것이다. 어떤 법안이 기준 법안으로 회부될지, 얼마나 많은 수정안들이 어떤 절차로 제시될지, 며칠 아니 몇 주가 걸릴지…세부 내용에 관해선 아직 밝혀진 게 없다. 결정권을 가진 매코널은 “모두에게 공정한 토론이 될 것”이라는 정도만 언급했을 뿐이다.

미국에서 자라고, 교육받고, 일하며 미국이 유일한 ‘내 나라’인 드리머들의 신분 합법화에 대한 초당적 지지는 여론에서도 의회에서도 이미 압도적이다. 그러나 실제로 다카 해법을 담은 이민법안이 이번엔 정말 입법화될지, 어떤 내용을 담을 지는 아직 누구도 장담하기 힘들다.

요즘 연방의회와 백악관에서 토의되고 제안된 이민정책들은 5가지 옵션으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180만명 드리머들에게 시민권 취득의 길을 열어주는 트럼프안이다. 현 다카 수혜자의 두 배가 넘는 드리머들을 구제하는 이 ‘관대한’ 정책은 한편으로 상당한 대가를 요구한다. 250억 달러라는 국경장벽 건설비용에 더해 가족이민 대폭 축소와 영주권 추첨제 폐지 등 합법이민에 대해 전례 없이 강한 제동을 걸고 있다.

다음은 보수진영의 반이민 강경법안들이다. 극우파는 다카협상을 자신들이 원하는 강경책 입법화의 호기로 보고 있다. 하원 법사위원장 밥 굿래트안엔 트럼프안의 반이민 조항들에 더해 ‘피난처 도시’ 처벌과 이민단속 강화, 종업원 전자 신원조회 의무화 등을 요구하면서 80만 드리머들에겐 매 3년마다 갱신해야하는 임시 합법신분만을 제안하고 있다.

그 이념의 스펙트럼 반대편에 선 리버럴 진영은 다른 조건 없이 드리머 보호만을 담은 ‘클린’ 드림법안을 촉구한다. 2001년 상정되어 상당한 지지를 확보했던 초당적 법안이지만 공화당 주도 의회에선 표결 근처에도 오르기 힘들 것이다.


어떤 법안이라도 현 의회에서 입법화되려면 상원에서 초당적 지지를 받아야 가능하다. 린지 그레이엄과 딕 더빈, 존 매케인과 크리스 쿤, 윌 허드와 핏 아길라등 각각 공화-민주 의원들이 공동 작성한 초당안들은 드리머 시민권 허용과 국경 강화를 핵심으로 담은 가장 합리적 옵션으로 의회 내 지지가 그중 높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초당안들 모두에 반대를 표했다.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에 대통령의 변덕까지 더해진 현 정국에서 수십년 미완의 과제인 초당적 이민법 성사를 기대하는 것은 역시 무리일까. 마지막 옵션은 연기다. 이번 주 초 폴리티코는 “의회는 아마도 드리머 딜레마를 연기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다카해결의 잠정적 연장이다. “약간의 국경강화 기금 증액과 함께 1년 보호 연장을 택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긴 트럼프가 지난 가을 선언한 3월5일 다카 폐지 데드라인은 법원이 개입하면서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폐지 결정에 대한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1월 초 연방지법 판사가 판결이 나올 때까지의 다카 현행유지를 명령했고 트럼프 행정부는 연방대법원에 이 명령에 대한 기각을 요청한 상태다.

초여름으로 예상되는 대법원 판정까지는 다카를 시행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지만 3월5일 이후 노동허가가 만료되는 경우 새 허가가 나올 때까지의 몇 달 동안 드리머들에겐 추방 위험을 막아줄 안전망이 없다.

명쾌한 전망도, 시원한 해답도 없다. 이처럼 난해한 다카의 현주소가, 왜 의회가 이번 기회에 드리머 구제방안을 확실하게 마련해야 하는지, 더 이상 늦추어서는 안 되는지를 말해준다.

다가오는 중간선거의 정치적 계산을 잠시 접어두고, 드리머들을 인질 삼아 합법이민 대폭 감축을 꾀하는 백악관의 시도를 물리치고, 너무 오랫동안 불안한 삶을 견디어온 수십만 젊은이들을 위해 이번만은 정말 연방의회다운 능력이 발휘되기를 기도하자. 2만 명에 가까운 한인 젊은이들도 희망의 빛을 기다리고 있다.

<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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