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황금을 보기를 돌 같이 하…”

2018-01-13 (토) 김순진 /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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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이민 온 후 몇 년 만에 작은 집 하나를 마련해서 살고 있을 때였다. 한국에서 같은 직장에 근무했던 L 교수가 미국 방문 중 나를 만나고 싶다고 집으로 찾아 왔다. 그는 대학교수이면서, 부잣집 사모님이다. 여전히 세련된 차림에 얼굴 가득히 웃음을 띠우고 집에 들어서서 반갑게 악수를 하고는 차 한잔을 놓고 마주 앉았다.

차를 마시면서 집안을 한번 휘돌아보더니 그가 말했다.

“아니, 김 선생, 남들은 미국에 와서 성공해서 큰집을 사고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다는데, 김 선생은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왜 항상 변함이 없우?”


한국에서 그가 와보았던 우리 집도 역시 작은 집이었다.

“이봐요, L 선생, 나는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우리 조상님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라서 살아온 모범생이라는 것 잘 알지 않아요?”

나의 재치(?) 있는 답에 우리는 마주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한국인이라면 아마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가르침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이 가르침 외에도 천박한 배금주의에 대한 경고는 참으로 많다.

“청빈” “안빈낙도” “나물먹고 물마시고” … 와 같은 옛 성현의 가르침은, 비록 표현은 다양하지만, 그 안에는 모두 “돈은 더러운 것이고, 가난하지만 깨끗하게 사는 것이 옳은 삶”이라는 교훈이 들어있다.

이같은 황금 숭배에 대한 경고는 오랜 세월 한국인들의 정신 속에 깊이 새겨있어서, 점잖은 사람들은 돈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는 불문율이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지속 되어왔다. 사회적 계급을 선비, 농부, 장인, 상인(士農工商)으로 서열을 매겨서, 돈을 만지는 상인을 최하위로 삼은 것도, 돈에 초연해야 한다는 한국인의 가치관의 표현이다.

이렇게 황금 천시를 강조한 것은 인간본성에 내재한 욕심을 제재하지 않으면 수습하기 어려운 탐욕의 난장판이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에서 조상들이 일찍이 세워놓은 교훈일 것이다. 비록 청빈이 무능과는 본질적으로 다르지만, 나처럼 무능력 때문에 부자가 못되는 사람에게는 아주 편리한 핑계가 될 수 있다.


세월은 흘러서 한국의 전통적인 가치인 청빈이 무능의 상징으로 추락한지도 꽤 오래 되었다. 세계 최대의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을 중심으로 황금만능주의는 전 세계에 열병 수준으로 확산되었고, 청빈을 도덕의 기본으로 삼았던 한국의 자손들도 이 대열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 “나물 먹고 물마시고…” 살면 속이 쓰린 것은 물론이고, 영양부족 때문에 일찍 세상을 떠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가난의 억지 미화일 수 있는 청빈을 버리고 돈을 벌어 잘살아 보자는 당연한 욕구가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이 당연한 욕구는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탐욕으로 변질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황금숭배의 세태로 타락했다. 지나친 탐욕 때문에 망신을 당하거나 파멸을 맞게 된 예를 한국에서, 미국에서 계속 보고 있다.

문제는 파멸의 원인인 황금에 대한 탐욕과, 집안 식구를 굶길 수 있는 청빈 사이에서 “행복한 중도”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새해에는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하지 말라” 또는 “두 양극 사이에서 적절한 위치를 찾으라” 라는 세 가지 선택 중에서 어느 것을 따라야 할지, 선택하기도 권고하기도 어려운 문제이다.

<김순진 /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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