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지랖이 넓으면…

2018-01-12 (금) 박문규 / LA 민주평통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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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랖이란 원래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말한다. 오지랖이 넓으면 그 안에 입는 다른 옷을 완전히 감싸 안을 수 있다는 뜻에서 오지랖 넓은 사람이란 모든 것을 아는 양 남의 일에 참견하고 간섭하는 사람을 이른다. 그런가 하면 오지랖은 어머니의 가슴에 입는 옷으로 자기 자식이나 남의 자식 가리지 않고 젓을 먹이며 받아 준다는 의미로 남의 어려움을 지나치지 못하고 나서는 사람을 일컫기도 한다.

흔히 오지랖 넓은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다지만 지나친 남 걱정은 구설수에 오르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너나 잘 하세요” 라는 핀잔을 듣게 하기도 한다. 최근 내가 그런 상황에 처했다.

첫번째 해프닝은 지난 연말 한인타운 어느 가게에서였다. 마지막 선물 준비에 나선 사람들로 붐벼서 지나다니기도 불편할 정도였다. 그때 2층에서 한인 할머니가 작은 카트에 몸을 의지한 채 계단 아래로 한칸한칸 힘들게 내려오고 있었다. 저마다 바삐 움직이느라 누구도 그 할머니를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내가 나서서 할머니를 계단에 잠시 앉아 계시게 하고는 카트를 두 손으로 들어 올려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와 내려놓고 다시 올라가 할머니의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왔다.


그 광경을 지켜본 아내가 하는 말이 “카트를 두 손으로 들고 난간도 잡지 않은 채 내려오다가 넘어지면 어떻게 할 것이냐”며 그렇게 오지랖 넓은 줄 몰랐다는 것이었다. 나의 설명을 듣더니 말 그대로 “너나 잘 하세요” 란다.

두번째 해프닝은 나의 사무실에서다. 고객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분이 주말마다 딸의 대학 기숙사에 가서 딸을 데려와 같이 지내고는 다시 기숙사로 데려다 주느라 바쁘다는 말을 들었다. 운전해서 한두 시간 걸리는 거리를 매주 다닌다는 말에 나는 “어쩌다 한두번이지 웬만하면 딸이 기숙사에 머물면서 친구도 더 사귀고 도서관에서 공부도 더 많이 하도록 배려해 주는 게 좋지 않을까” 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분의 반응인즉 “걱정 마세요. 우리 딸은 공부도 잘하지만 또 지금 나이가 몇인데 내가 공부하라고 한들 내 말을 듣겠느냐”는 것이다. 평소 생각해온 바를 말했는데 본의 아니게 그만 오지랖 넓은 사람이 되고 말았다.

세번째 해프닝은 이른 아침 공원에서였다. 매일아침 집 근처 공원에 나가 한 시간 반 정도 달리기를 하는데, 시간이 일러 사람들이 별로 없고 한인들은 더 더욱 만나기 힘들다. 그런데 어느 날 나와 동년배로 보이는 분이 작은 라디오를 들고 천천히 걷고 있었다. 라디오 소리가 워낙 커서 그가 한인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발걸음을 멈추고 “안녕하세요, 한국분이시군요” 라고 인사를 했다.

그 분의 반응인즉 “그런데요?” 라며 걸음을 멈추고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것이었다. 나는 할 말을 잃고 당황했다. 그 분이 라디오 듣는 데 내가 괜한 참견을 한 꼴이 되어 버렸으니 이 또한 나의 넓은 오지랖 탓이었다.

나이가 늘면서 이층 오르내릴 때는 한 손으로 꼭 난간을 잡아야한다는 지침을 받은 터였다. 그런 내가 조심성 없이 남의 일에 나서며 카트를 들고 계단을 내려가고, 남의 일에 참견하는 일은 분명 오지랖 넓은 행동이었다. 다시는 함부로 나서지 말아야겠다는 다짐과 아울러 아무리 좋은 뜻으로 말해도 상대방이 그런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큰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오지랖이여 안녕!

<박문규 / LA 민주평통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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