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물의 기쁨

2018-01-06 (토) 양안나 / 버클리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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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물건이든 대가를 바라지 않고 감사의 표현으로 주는 선물은 받는 사람도 가벼운 마음으로 받을 수 있어 좋다. 굳이 물건이 아니어도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바쁜 시간을 나누어 갖는 것도 각박한 생활에서 좋은 선물이 된다.

남태평양의 어느 원주민은 어머니라 부르는 대지와 아버지인 하늘에게 바치는 선물의 문화가 깊이 자리 잡았다. 물질에 대한 욕망이 없었던 그들은 선물할 때가 되면 섬 전체를 돌며 선물을 한다.

가령 갑이란 자가 을에게 선물을 주었다면 을은 갑에게 답례를 하는 게 아니라 병에게 준다. 또한, 병은 정에게 선물의 순환성으로 언젠가는 처음의 갑에게 돌아간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모두가 선물을 일시나마 기쁘게 받는다. 물자가 귀한 곳에서 희귀한 팔찌나 목걸이를 한 번씩은 만져 본 후에 다음 사람에게 넘어갔을 것이다. 선물의 주고받음이 인류의 보편적 관습으로 정착되는 과정을 인류학자 모스는 증여론에서 말한다.


몇 년 전 이곳에서 일이 년 살다 귀국하는 친구를 배웅하기 위해 잠깐 들렀더니 촌스러운 색깔의 플라스틱 바가지 속에 이것저것 선물을 담아 예쁜 보자기로 싸서 주었다. 바가지에 담아주는 발상이 재미가 있어서 물어보았더니 미국까지 가져온 바가지를 보고 놀라워하던 내 표정을 잊지 않았다고 했다.

빨래판처럼 홈이 안쪽으로 균일하게 새겨진 이것은 가벼워서 여러모로 사용 가치가 높다. 국물을 따라 부을 때 손잡이가 깔때기 역할도 하고 나물을 무칠 때도 다른 무거운 그릇보다 좋다. 친구도 그 물건의 첫 번째 주인을 모른다고 훗날 말했다. 나보다 수명이 길 것 같은 이 플라스틱의 운명을 알 수는 없지만, 분명 복 바가지일 것이라며 우린 한바탕 웃었다.

어느 선배는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가면서 교자상을 누군가에게 주고 떠났다. 10여 년 후 안식년을 맞아 다시 그 학교로 돌아와서 상이 필요하던 차에 전혀 일면식도 없는 사람으로부터 상을 얻었다고 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선배의 개구쟁이 아들이 상위에 올라가서 다리가 휘청거리는 것을 금속으로 고정한 자신의 상이었다고 했다. 10여 년 만에 잃어버린 아들을 만난 기분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로부터 한 송이의 장미를 선물로 받았다면 그것은 물건이 아니라 마음이다. 준 사람의 향기도 배어 있을 것이다. 작은 선물에도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여유 있는 삶은 아름답다.

<양안나 / 버클리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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