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 a watch, O LORD, before my mouth; keep the door of my lips.
오 주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시편 141:3]
사람들은 시절따라 다소 일탈된 모습을 보이는 중에도, 우리 강아지 '비주'는 늘 말이 없습니다. 사람들 언사 중에 그 얼마나 잘못되고 불필요한 것들이 많은지. 특히, 그 중 대부분의 불량한 언사들이 바로 내 입에서 쏟아져 나오니 참으로 어이없을 뿐. 간만이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말을 섞으며 느끼는 '함구'(緘口)의 보배로움. 침묵은 금이어라. Silence is golden!
불교에선 네 가지 구업(口業)을 말합니다. 세치 혀를 굴려 말로 짓는 죄가 넷이라: 남을 속이는 망어(妄語), 험한 말로 가슴에 상처를 내는 악구(惡口), 이간질하는 양설(兩舌), 요망하게 현혹하는 기어(綺語). 모두 나쁘지만, 특히 독설로 가슴 아픈 상처를 내는 '악구'야말로 구업 가운데 으뜸 두목. 그런데, 돌이키건대 …… 그 악구의 주인공이 대저 바로 나라는 사실에 종종 경악하곤 합니다. '그건 너!'가 아니고 '그건 나!'요, 오직 "Mea culpa![내 탓이요]"라는 사실.
그래서, 평생 갖은 고초(苦楚)를 다 겪은, 그야말로 세상 '함한 꼴' 모두 체험해낸 다윗[Davis] 왕의 "시편" 구절들을 찾아 음미하며 묵상하고 반성합니다. 지난 연말 이런저런 자리에서 스스로 지은 구업(口業)을 뉘우칩니다. 옛날, 천수경(千手經)을 외울 시절엔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을 되뇌며 마음의 위안을 삼곤 했지만, 주님의 '성노'(聖怒)를 아는 지금은, 다만 다윗왕의 기도로 진언을 대신할 뿐.
Set a watch, O LORD, before my mouth; keep the door of my lips. [KJV]
오 주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Set a guard over my mouth, O LORD; keep watch over the door of my lips. [Psalms 141:3, NIV] 오 주님, 내 입에 문지기를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스스로 지킬 수 없는 내 입. 전혀 통제 불가능한 내 입술. 마귀의 장난에 마구 휘둘리는 내 세치 혀. 오 주님, 내 입과 입술과 혀를 모두 제어하는 파수꾼을 세우소서.
내 힘으론 안되나이다. 내 입이 내 힘 밖이로소이다. 부디 무서운 파수꾼을 하나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Keep the door of my lips, O LORD. 그렇게, 지금 이 글이 쓰여지는 순간에도, 그저 고요히 앉아 산보 나갈 시간을 기다리는 말티즈 견공 '비주'[Bijou]를 잠시 내려다봅니다.
급하고 절실할 때면 마구 소리내어 짖지만, 악구(惡口)가 아닌 그저 담백한 견언(犬言)임을 압니다. 하루 종일 대부분 함구로 묵언(默言)하며 일상을 보내는 '사람인 나보다 나은' 견성(犬性)에 감복(感服)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있는 자리라도 지킬 사람이, 공연히 떠들다 '개만도 못한' 신세가 되더라?
Set a watch, O LORD, before my mouth; keep the door of my lips.
오 주(主)님,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신약성경의 잠언서'라 불리는 '야고보서'에도 구업(口業)을 경계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3:6]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3:8]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3:10]
선업(善業)을 지으며 살려고 애써도 지옥불이 바로 코 앞인데, 넋놓고 구업(口業)을 비롯한 온갖 업장(業障)에 시달리는 모습! 2018년 새해를 맞아 들이며, 딱히 New Year's Resolution 이니 뭐니 할 게 아니라, 다만 함께 사는 견공 '비주'라도 조금씩 닮아 늘 묵언정진하는 새해가 되었으면 하는 원(願)을 세워봅니다.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냐?"는 불가의 화두는 익히 자명하여 그지없기 때문입니다.
Shal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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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 [커뮤니케이션 학 박사/영어서원 백운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