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퍼리치의 잔칫날

2017-12-20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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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세계 경제의 뚜렷한 흐름 하나는 부의 편중이다. 미국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어서 1989년 상위 10%가 차지한 미국내 부의 비중은 30%에 불과했지만 2013년에는 70%로 증가했다.

미국인들을 상대로 한 여론 조사는 사람들도 이를 피부로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92년부터 매년 갤럽이 실시하고 있는 여론 조사에 따르면 55%에서 77%의 비율로 미국민들은 부자가 내는 세금이 너무 적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 특이한 것은 상속세에 대한 태도다. 미국민들은 부자가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하면서도 부자가 내는 상속세는 폐지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2015년 팍스 여론 조사에 따르면 71%가 상속세는 불공평하다고 응답했으며 2003년 카이저 조사에 따르면 60%가 상속세 폐지를 지지했다. 그 이유로는 한 번 세금을 낸 돈에 다시 세금을 매기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92%에 달했다.


그러나 모든 상속 재산이 두번 과세되는 것은 아니다. 이 중 상당 부분은 자본 소득세를 한 번도 내지 않은 주식이나 부동산이다. 물론 대대로 이어내려온 가업이나 농장을 남겨놓고 부모가 갑자기 사망하는 경우 상속세를 내기 위해 이를 급하게 처분해야 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 전체로 볼 때 1년에 수십 건 정도로 미미하다.

상속세 폐지를 지지하는 미국민 중 상당수는 이것이 자신에게 불이익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올스테이트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민 가운데 상속을 받은 사람은 25%에 불과했지만 자녀들에게 유산을 남기겠다는 사람은 74%에 달했다. 상속세 폐지를 지지하는 사람의 69%는 이 제도가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을 걱정했다.

전에는 이런 우려가 일리가 있었다. 불과 2001년까지만 해도 상속세 면세점은 부부 1인당 67만 달러였다. 이를 넘는 액수에 대해서는 55%의 상속세가 부과됐다. 그러나 이 액수는 매년 상향 조정돼 지금은 550만 달러까지 높아졌다. 이것은 부부 1인당 액수니까 재정 계획을 잘 세우면 부부 두 사람이 1,100만 달러까지는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고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 줄 수 있다. 이보다 많은 재산을 남기고 죽는 사람은 전 미국인의 0.5%에 불과하다.

그러나 연방 상하원과 백악관을 장악한 공화당은 이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크리스마스 전 대통령 서명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세법 개정안은 상속세 면세 한도를 부부 1인당 1,100만 달러로 높여 놓고 있다. 부부 둘이면 2,200만 달러로 이에 해당되는 미국인은 전체의 0.2%도 안 된다.

공화당은 이번 세법 개정을 ‘중산층을 위한 감세안’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감세 혜택의 대부분은 극소수 부유층에 돌아간다. 연소득 5만에서 7만5,000달러의 중산층은 평균 900달러 세금이 줄지만 연 100만 달러를 버는 상위 1%는 7만 달러를 아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 감세안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분명히 보여주는 것은 상속세에 관한 부분이다. 2,200만 달러의 재산을 후손에게 남겨주는 부자들은 440만 달러의 상속세를 절감할 수 있게 된다.

19세기말 기부왕 앤드루 카네기는 많은 재산을 가진 채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상속세를 통해 국가가 부를 환수할 것을 주장했다. 올해는 미국에서 상속세가 탄생한지 101년이 되는 해다. 그때보다 부의 편중이 심화된 지금 상속세가 사실상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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