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령선’ 현상

2017-12-1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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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는 80척의 낡은 배가 파도에 휩쓸려 표류해왔다. 연료통이 비어있다. 동력은 끊긴지 오래다. 훼손도 심하다. 더 끔찍한 것은 그 배들에서 백골만이, 때로는 부패해가고 있는 시신만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표류선박은 ‘유령선’으로 불리고 있다.

동해를 바라보는 일본의 서부해안에서 해마다 벌어지고 있는 이 ‘유령선’ 현상은 표류선박 수가 한동안 줄면서 뜸해지는 것 같았다. 한 해에 80척으로 보고되던 표류선박이 45척으로 감소하는 등.

올해 들어, 그리고 특히 11월 이후 ‘유령선’현상은 부쩍 심해지고 있다. 벌써 76척의 표류선이 일본의 해안으로 밀려들었고 11월 이후에만 28건의 ‘유령선’ 현상이 보고되고 있다.


관계당국에 따르면 11월 한 달 동안에만 서부해안으로 표류되어온 15척의 ‘유령선’에서 40구의 시신이 발견 됐다는 것이다.

가을부터 동해는 악천후의 계절이 된다. 낡은 선박, 영세적인 형태의 어선의 어로활동은 극히 위험하다. 11월 이후 ‘유령선’ 현상이 부쩍 심해지는 것은 바로 이런 계절적 요인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당국의 설명이다.

이 ‘유령선’들은 어느 나라 배일까. 거의 대부분이 북한 선박이다. 백골만 남았다. 배는 몹시 훼손됐다. 때문에 죽은 사람들의 신원, 배의 국적 등을 확인할 수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많은 경우 김일성배지, 북한 담배 등이 발견되고 있어 일본의 관계당국은 북한 어선들로 파악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그러니까 악천후의 계절에 낡아빠진 북한의 어선들은 왜 무리하게 어로작업에 나섰다가 유령선이 되고 마는 것인가. 이는 바로 북한의 불안정한 식량사정을 알리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북한의 식량사정이 열악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정황에 올봄 북한에는 심각한 가뭄이 엄습, 북한의 곡물경작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는 것이 유엔의 보고다.

북한 주민 중 600만이 식량원조가 필요한 상황이고 북한 어린이의 1/3이 영양부족, 혹은 발육장애 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북한의 처절한 생활수준, 심각한 식량문제의 한 단면을 알려준 것은 총을 맞으면서 남쪽으로 탈출해온 귀순병의 수술과정에서다. 북한군 정예부대 소속이다. 그런데 그 귀순병의 배속에서 발견된 것은 온통 기생충에다가 옥수수 몇 알로 드러난 것이다.

만성적인 식량부족을 해결하고 군자금 충당을 위해 김정은은 어로산업 확장을 지시했다. 이 같은 ‘수령의 지시’에 따라 북한 어선들은 악천후의 계절에도 무리한 어로작업에 내몰렸다가 ‘유령선’이 되고 마는 비극이 속출하고 있다는 거다.

그러면 얼마나 많은 북한 어선들이 ‘유령선’이 되고 있을까.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전복돼 수장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아 일본해안으로 표류되는 ‘유령선’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또 백두산에 올랐다. 이번에는 무슨 엉뚱한 지시로 사람들을 사지로 몰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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