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네 영혼을 거둬 간다면…”

2017-12-09 (토)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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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아침. 잠에서 깨어나 커튼을 여니 2층 베란다 유리문 밖으로 야자수가 고요히 서있다. 바람이 잦아들었다. 그 전날 밤에는 밤새 윙윙거리는 바람소리에 잠을 깨곤 했다. 시속 80마일의 강풍이 몰아치니 곳곳에서 넘실거리는 화마들이 얼마나 기고만장할 것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것인가 - 걱정이 밀려들었다.

유난히 다사다난했던 2017년도 ‘이제 저무는 구나’ 싶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으로 이민 커뮤니티들이 불안에 떨고, 북한 김정은의 연이은 핵실험으로 한반도 전쟁위험에 긴장하고, 남부 허리케인과 북가주 산불이 초래한 기록적 피해에 가슴아파하고, 미국 현대사상 최악의 인명피해를 낸 라스베가스 총기난사 사건에 충격 받으며, ‘미 투’ 물결에 각계의 유명인사들이 추락하는 모습을 심란하게 바라보며 … 12월을 맞았다. 이만하면 한해의 사건사고로 족하다 싶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크리스마스 맞을 준비와 송년모임으로 한해를 마무리하려는 데, 이번에는 산불이 남가주를 습격했다. 샌타애나 강풍에 실린 불길이 지난 4일 벤추라 지역을 시작으로 LA 주변 예닐곱 곳에서 연이어 솟구치고 퍼져나가면서 남가주는 거대한 불의 포로가 되었다. 8일 기준 샌타바바라에서 샌디에고에 걸쳐 토마스, 크릭, 라이, 스커볼, 라일락, 리버티의 6개 산불이 잿더미로 만든 면적은 총 14만1,000에이커. 불을 피해 21만 2,000명이 대피한 중에 건물 500여 채가 전소되고, 2만5,660채의 가옥이 위태롭다.


잠시 잦아들었던 바람은 다시 강해져서 산불의 기세는 10일까지 꺾이지 않을 것이라고 기상청은 전망했다. “모든 것은 바람이 할 탓, 바람이 예측불허이니 산불도 예측불허”라고 기상전문가는 설명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가 생각난다. 풍작을 거둔 부자가 흡족한 마음으로 계산을 한다. “곡식 쌓아둘 공간이 부족하니 곳간을 헐고 크게 새로 짓자, 거기에 모두 쌓아두면 이제 평안히 먹고 즐길 일만 남았구나!” 부자는 만족감에 도취된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각은 다르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영혼을 거둬 가면 그 모두는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당장 오늘 죽을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의 조건인데 천년만년 살 것 같이 소유에 집중하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우리에게는 너무도 잔인한 사실이지만, 인간이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조건은 인생의 예측 불허성.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을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마다 이야기들이 있다. 수십년 알콩달콩 살아온 삶의 이야기들이다. 불의 기세가 가장 그악스러운 벤추라 카운티 오하이의 한 부부는 42년 동안 살아온 집을 잃었다. 그냥 산 것이 아니라 가꾸고 즐겼다. 목수로 건축 일을 하는 남편은 틈나는 대로 집안을 손질해서 동화 속 집처럼 꾸몄다. 뒷마당에서는 친척들이 결혼식을 했고, 가족들이 세상을 떠나면 납골함을 집안에 보관했다. 2주 전에는 카펫을 바꾸고 나무 바닥을 새로 깔았다.

구석구석 추억이 서린 부부의 작은 왕국은 이번 불로 바닥까지 타버렸다. 남편의 작업실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용케도 건진 것은 남편 제이크의 별세한 어머니 사진. 벽난로 앞에 놓여있던 사진이 바람에 날려 흙더미 속에 떨어지면서 불에 타지 않았다. 부부는 ‘기적’이라며 반기고 있다. 생전의 어머니처럼 씩씩하게 다시 일어나라는 신호로 보고 있다.

‘그날이 그날 같다’고, ‘이렇게 지루하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불평을 하며 살다보면 어느 순간, 이전과 이후의 삶을 분명하게 갈라놓는 사건이 터진다. 생로병사가 숙명인 인간으로서 누구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주로 재난, 질병, 사고, 실직, 죽음 등. 유형은 제각각이어도 가졌던 것을 잃어버리는 상실의 아픔으로서 같다.

예기치 못한 일이 뒤통수를 치듯 들이닥치면 비로소 우리는 깨닫는다. 별일 없어 지루하던 일상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를 절감한다. 당연히, 영원히 거기 있으리라 여겼던 바닥이 한순간에 꺼져 내릴 수가 있다. 곳간을 늘리기에 우리의 소유/존재는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

산불 피해자들에게 그리고 이 겨울 다른 상실로 고통스런 이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현실은 오래도록 비현실 같고 초현실 같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인간으로서 우리가 거역할 수 없는 현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살아낼 용기가 필요하다.

“애벌레에게 세상의 끝이 나비에게는 시작”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크나큰 아픔이 닥쳐도 삶은 이어진다. 애벌레의 장은 끝나고 나비의 장이 시작된다. 대신 ‘인생은 예측불허’라는 렌즈를 끼고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옆에 있는 누군가를 허투루 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 내 영혼이, 그의 영혼이 거둬질 수도 있을 테니.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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