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좋아해도 그건 아니다

2017-10-30 (월) 12:00:00 김성준/ 콜로라도대 정치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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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해도 그건 아니다

김성준/ 콜로라도대 정치학 박사과정

가끔 나에게 연애상담을 부탁하는 이른바 ‘모태솔로’ 남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질문은 대체로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는데, 어떻게 하면 그 사람과 사귈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 나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그저 ‘좋은 친구로 주변에 머물면서 그녀에게 진심을 보여주라’고 조언할 뿐이었다. 도대체 이보다 무난한 조언이 있을 수 있을까.

하지만 나에게 상담을 청했던 남자들 대부분은 ‘진심을 보여주는 것’과 ‘좋은 친구로 머무는 것’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었다. 진심을 보여주라는 건,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내 감정을 강요하라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좋은 친구로 머물라는 건, 상대방을 쫓아다니며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았다. 내가 자격도 없는 연애상담을 해주면서, 나도 모르게 성추행과 스토킹을 부추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오해가 어떤 잘못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여러 차례 목격한 다음부터, 나는 더 이상 같은 조언을 하지 않는다. 어차피 남의 마음을 얻는 특별한 비법 같은 건 없다. 그렇다면 최소한 내 주변의 남자들이 스토킹이나 성추행을 저지르는 일이라도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는 누군가 나에게 연애상담을 해오면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해줄 생각이다.

고백하기 전에 상대방의 마음을 미리 파악해보라. 이를 위해선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면서 행간을 읽어보는 정도면 족하다. (상대가 당신과의 대화를 거부한다면 이미 틀린 것이다.) 상대도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이 빤히 보인다면 뭘 망설이겠는가.

다짜고짜 뽀뽀나 포옹을 시도한 다음에 상대의 반응을 보려 해서는 안 된다. 드라마에서는 그런 장면이 멋있게 그려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2017년의 현실세계에서 동의 없이 상대에게 스킨십을 시도하는 건 고백이 아니라 성추행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할 용기가 나지 않을 수 있다. ‘취중진담’이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용기를 내기 위해 맥주를 한잔 마셔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그러나 술에 만취해서 다음날 기억도 안 날 민폐를 상대방에게 끼치는 건 정말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게다가 만취해서 상대방의 몸에 손을 대기라도 했다면, 그 순간부터는 우발적인 해프닝이 아니라 범죄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는 있다. 그러나 상대방의 마음을 얻으려는 노력이 언제나 먼저여야 한다. 상대방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은 등한시한 채, 동네방네 돌아다니면서 그녀의 친구나 동료들에게 내가 누굴 좋아한다는 소문을 퍼뜨리는 건 좋지 못한 행동이다.

이는 상대방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주는 일일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인간관계와 교류의 범위까지 심각하게 제약하고 침해하는 일일 수 있다. 사랑은 주변 사람들을 이용한 강요와 압박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너무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주변의 친구들이나 선후배들이 여기서 하지 말라는 행동을 하는 걸 본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강조하고 싶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정당화해주지는 못한다.

아무래도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이 연애를 꿈꾸는 남자들을 망치고 있는 것 같다. 여자들은 찍어서 쓰러뜨려야 할 나무가 아니다. 각자 선호와 욕망이 있는 사람들이다. 상대방이 싫다고 하는데도 포기하지 않으면 거기서부턴 사랑이 아니라 스토킹이다. 이해가 안 되면 외우도록 하자.

<김성준/ 콜로라도대 정치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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