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Me, too”

2017-10-23 (월) 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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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too”

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Me too.” 지난 주말부터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에 많은 친구들이 포스팅하기 시작한 문구이다. 과거에 성적 괴롭힘이나 공격을 당한 적이 있다면, 이런 문제가 이 사회에서 얼마나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지 모두가 알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라는 운동이다.

많은 온라인 활동이 그러하듯이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할리웃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오랜 성폭력과 성희롱에 노출되어있던 배우나 모델들이 자신의 경험을 증언하며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며칠 사이에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포스팅의 수를 보니, 과거 어느 날, 어느 시간 함께 했던 여성들과의 대화가 생각났다. 모두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의 나이였고, 이들 중에는 기혼자도 있고, 미혼자도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10대 때까지 계속되는 악몽에 시달리다가, 엄마와 대화 후 어렴풋이 남아있는 어릴 적 성폭력 기억을 확인했다고 했다. 악몽과 기억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것 같아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그 이야기가 나오자, 마치 지금의 소셜 미디어 캠페인처럼 이어지는 “나도…” 로 시작하는 비슷한 경험담들이 줄을 이었다. 사건의 경중의 차이와 개인에게 남은 상처의 심각함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놀랍게도 그 자리에 있던 여성들 모두 “Me too”를 외쳤다.

성희롱이나 성폭력의 경험을 가진 여성들이 이렇게 여럿 모여 이야기 할 확률이 얼마냐 되느냐고 누군가 물었지만, 돌이켜 생각하니 이는 확률의 문제가 아니라 믿을 수 없을 만큼 보편적인 사회 문제였던 것이다.

그나마 성인이 되어서 겪는 부조리한 상황들은(여전히 두렵고 힘든 일임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뭐라도 해 볼 여지가 있지만, 미성년자로서 그런 일을 겪었을 경우는 대부분 부모조차 모르고 지나가거나, 부모가 알아도 ‘일 키워 좋을 거 없다’는 판단에 그냥 덮고 지나가기 마련이었던 것 같다. 소문나봐야 좋을 것 없다는 피해자의 자책 심리도 한 못 했으리라 싶다.

그렇게 그 자리에 있던 여성들이 모두 “ Me, too”를 외쳤지만 그 중 누구도 법에 호소하지 못하거나 안했다는 것도 공통적으로 “Me, too” 였다.

최근에는 한국의 부모들도 경각심을 가지고 아이들을 키우지만, 내가 어릴 적만 해도 7-8살이면 부모 없이 놀이터에 가거나, 혼자 집에 남아 놀거나 하는 일이 잦았다.

성교육은 유한킴벌리에서 파견한 외부 강사가 실시했고, 누가 신체적으로 해를 가해도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유사 사건이 발생하면 부모는 아이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걸 자책하고, 피해자는 왜 그런 시간에 그런 장소에 그런 옷을 입고 갔는지 비난을 받는다. 그 기억이 주는 고통에 차마 “Me, too” 포스팅에 함께 하지 못하기도 한다. 차마 말하지 못하는 그 마음들을 이해하고 위로를 보낸다.

줄줄이 올라오는 포스팅을 보며, 대책도 없이 그저 무기력하게 “Me, too”만 계속하는 한 상황은 “Now, too” 그리고 “Tomorrow, too” 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좀 나아졌으면 하는 절실함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Me, too”가 아픈 마음들에는 위로를, 무지한 오해들에는 이해를 주었으면 좋겠다.

<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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