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벨 문학상

2017-10-16 (월) 이현주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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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

이현주 프리랜서 작가

지난 5일, 2017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일본계 영국인 작가인 가즈오 이시구로가 선정되었다. 작년에는 가수 밥 딜런이 선정되는 파격적인 일이 있었기에 올해의 수상자는 누가 될 것인가가 몹시도 궁금했는데, 유명 소설가가 선정되어 별난 일은 다시없구나 싶었다.

두 해 연속으로 별 일이 일어나기에는 그 상의 권위와 무게가 너무도 크고 무거운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나 같은 사람이 이러쿵저러쿵할 일은 아니다.

10여년 전, 모교의 대학 출판부에서 인턴십을 했다. 인턴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저런 잔심부름에 불과했지만, 즐거웠다.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책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던 때였다. 그래서 잡일도 즐겁게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즐거움은 괴로움이 되고 말았다. 너무 대단한 작가가 우리 출판부를 드나들기 시작한 것이다. 마주치면 절을 해야 할 것만 같고, 물 한잔 떠다 바칠 때에는 무릎을 꿇어야 할 것만 같았다. 나는 꽃병의 물을 갈며, 아이스크림을 예쁜 유리그릇에 옮겨 담으며, 가습기의 물탱크를 솔로 문질러 닦으며 그의 방문을 괴로워했다.

싫어서가 아니라 좋은 게 문제였다. 본래 나는 너무 좋으면 벙어리가 되는데, 당시 한국어로 번역된 그의 작품을 모두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마음에 든 작가였다. 게다가 그는 프랑스인이고, 나는 프랑스어를 하나도 못하니 완벽한 벙어리가 되었다. 영어도 자신이 없었다.

할 말이 없어 닦은 물탱크를 또 닦기도 했다. 그러고 나니 작가가 나를 청결에 유난히 집착하는 이상한 학생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또 괴로웠다. 정말이지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 괴로운 여름이 가고, 작가는 프랑스로 돌아갔다. 그는 그 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시절 나의 괴로움은 단지 수줍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시 나는 한국문학을 전공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문학의 가능성에 대한 의문에 사로잡혀 있었다. 매년 고은 시인이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면서도 결국은 수상하지 못하는 것, 우리와 언어의 문법적 구조와 문화권이 근접한데도 세계적 베스트셀러를 내는 옆 나라 일본 문학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혹시 한국어가 문학적으로 열등한 언어인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었던 적도 있었다. 또, 그런 생각을 품은 나 자신이 사대주의에 빠져 있구나 싶어 다시 괴로웠다. 그래서 외국 문학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지나친 경외감이 섞여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러웠고, 결국 과도한 자기 검열에 빠져 순수한 마음으로 작품을 대하지 못하게 된 자신이 몹시도 한심해서 괴로웠다.

스웨덴 한림원의 한 일원은 이시구로의 작품을 가리켜 카프카, 제인 오스틴, 마르셀 프루스트의 절묘한 조합 같다고 표현했다. 극찬이다. 그런데 노벨상 제정 이전이었던 1817년에 사망한 오스틴은 논외로 하더라도, 카프카와 프루스트는 모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한 작가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카프카와 푸르스트의 작품이 나에게 괴로운 여름을 선사했던 2008년 노벨상 수상작가,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의 작품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좋은 작품은 노벨상의 권위를 빌지 않더라도 여전히 좋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매년 이맘때가 되면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이현주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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