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우리가 기억해야 할 과거

2017-09-13 (수) 12:00:00 정한아(BAKI 카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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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간만에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다. 동네의 한 작은 영화관에서 한국영화를 상영한다는 것은 뜻밖의 기대감과 꼭 가서 보리라는 명분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버클리에 위치한 Rialto Cinemas Elmwood 극장에서 ‘택시운전사’라는 최신 한국영화를 봤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점 그리고 실제 인물을 배경으로 찍었다는 점 정도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영화 속 송강호의 연기와 80년대 생활상을 배경으로 한 내용은 너무 완벽한 하나의 스토리로 잘 짜여 있었지만 때때로 나오는 웃음 포인트 부분은 내용전달을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인가 의아스럽기도 했다. 나에게도 그때의 광주를 어렴풋이 기억할 만한 일이 있다.

90년도 언젠가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큰집에 제사지내러 갔다가 사촌오빠 방에 있는 책 한 권을 우연히 보게 됐다. 여러 장의 흑백사진이 실린 책이었는데 그 사진 안에는 많은 사람이 피투성이가 된 채 길에 쓰러져 있거나 아니면 군복을 입은 이에 의해 폭력을 당하거나 그들에 의해 끌려가는 모습이었다.


사람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부서진 인간의 형상이 너무 적나라하게 사진에 나열되어 있었고 거기엔 교복을 입은 학생, 평범한 직장인 하물며 노인분들의 시신이 길바닥, 논두렁, 병원 사방팔방에 흐트러져 있었다. 전라남도 소도시 중 학업을 위해 더 큰 도시인 광주로 고등학교 유학을 보냈던 때인지라 어린 자식을 잃거나 해를 당한 경우가 많았다고 나의 외할머니 또한 광주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5,0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만들어낸, 한 나라의 같은 국민이 공격을 하고 또 공격을 당한 비극적인 역사이다. 많은 무고한 시민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그는 얼마 안되는 통장 잔액을 내밀며 아직 멀쩡히 살아있고 그의 명령을 따른 군부대의 부하들은 한국사회의 보수권력층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최근에 벌어진 국정농단 사태를 보며 평범한 시민들이 지켜내고자 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갈 길은 더욱더 멀어진 것만 같다. 요즘 많은 이들이 적폐청산이라는 말을 하며 과거의 죗값을 현재에 묻고자 한다. 죽은 이는 더는 말이 없다. 아니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그때의 그 권력자들의 진정한 잘못의 깨우침과 진심 어린 사과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그들에게 전하고 싶다.

<정한아(BAKI 카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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