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느 주말, 두 개의 미국

2017-08-21 (월) 양지승 /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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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지난 주말 바다가 보이는 근사한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학부시절부터 14년을 만나온 이 커플의 신부는 베트남 이민자 부모에게서 태어난 나의 친구이고 신랑은 에콰도르 태생 부모에게서 태어난 이민 2세이다. 시시콜콜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보수적인 여자 쪽 부모가 남미계 사위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좀 필요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 커플이 오랫동안 준비한 결혼식은 참으로 뜻 깊었다.

중국이나 베트남의 전통 결혼식에는 흔히 티 세리모니(Tea Ceremony)가 포함된다. 이 의식은 신랑 측 부모와 친척들이 선물과 편지를 가지고 와서 신부 집 문 앞에 줄을 선후, 신랑의 아버지가 “댁의 따님을 우리 아들과 결혼시키러 왔다”는 내용의 편지를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나이가 좀 많은 신랑 아버지가 모국어인 스페인어로 편지를 읽는 장면이었다. 스페인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내가 들어도 그 진심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온 마음을 다해 글을 읽는 것이 느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신랑은 이미 가족들에게 이 의식 관련 비디오를 보여주고 각 단계와 의식마다 어떤 의미가 있는지 에콰도르 가족들에게 설명하고 교육시켰다고 한다.


본 예식은 성당 혼배 미사식이었는데, 신랑신부는 모두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영어가 익숙하지만 양가 가족들은 베트남어와 스패니쉬가 모국어들이라, 식이 3 개국어로 진행되었다. 놀랍게도 성당 신부님은 외국어 천재(?) 였다. 3개 언어를 모두 자유롭게 구사했다. 리셉션의 음식과 여흥 프로그램과 음악 또한 미국, 아시아, 라틴 지역을 모두 아우르고 있었고, 신랑의 들러리는 이탈리아인, 신부의 들러리는 라오스 출신 친구와 한국 출신 친구 나였다. 그렇게 참으로 국제적인 웨딩이었다.

남가주의 한쪽에서 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때로는 불편함을 감수하며까지 서로 받아들이기 위해 애쓰며 한 가족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던 주말, 버지니아의 한쪽에서는 언어도 같고 국적도 같은데 다른 피부색을 이유로 배척하고 대립하고 급기야는 다치고 죽어나가는 폭력이 진행되고 있었다.

리셉션을 마치고 늦은 밤 둘러 앉아 와인과 위스키를 마시며 신랑, 신부 그리고 친구들은 버지니아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자 느끼는 인종차별과 미국에서 유색인종으로 살아가기, 혹은 한국과 베트남에도 인종차별이 있는지 등등에 대해 담소를 나누었다. 단일민족 개념이 강한 한국에서도 타민족에 대한 배척과 인종차별의 문제는 존재하지만,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사실상 최근 국제결혼 증가와 노동시장의 변화 이후이다.

극단적인 두개의 미국을 경험하며, 시간이 더 흐르면 한국은 또 어떤 모습일런지 생각해 본다. 사랑, 축하, 이해, 배려, 희생, 술, 웃음 이런 단어들이 채우는 한 면과 증오, 혐오, 총, 폭력, 고함이 채우는 다른 한면이 특히 대조적인 어느 주말이었다.

<양지승 /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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