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반도 사태가 심각한 이유

2017-08-02 (수) 이철 고문
작게 크게
한반도 사태가 심각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데 대해 매우 실망했다. (중국을) 더 이상 이대로 두지 않겠다”고 강경자세를 보이고 있다. 시진핑 주석과 백악관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마친 후 “미국과 중국은 새로운 우호관계를 설립했다”고 말한 것이 어제 같은데 우호는커녕 양국이 충돌을 서슴지 않는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더 이상 이대로 두지 않겠다”는 발언은 중국과 무역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의미다. 여기에다 니키 헤일리 주 유엔대사는 중국의 대북 압박을 강조하면서 “대화의 시간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헤일리 대사는 “아무런 결과를 낼 수 없는 안보리 비상회의라면 소집할 필요가 없다”고까지 나올 정도다. 이는 미국의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미중 무역전쟁은 한국경제에도 막대한 타격을 가할 것이다.

미국의 이와 같은 자세에 대한 중국의 반응이 예사롭지가 않다. 시진핑 주석은 인민해방군 건군 90주년 행사에서 군복을 입고 사열하는가 하면 경축사에서 “인민해방군이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에서 승리해 국위를 떨쳤다”고 말했다.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란 중국이 북한을 도운 6.25 전쟁을 의미한다. 이는 북한을 혈맹이라고 한 최근의 시주석 발언과 무관치 않다.


문제는 한미관계다. 북한이 화성-14형 ICBM을 쏘아 올리자 트럼프 대통령이 제일 먼저 전화를 건 상대방은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일본의 아베 총리다. 미국이 한국을 제쳐놓고 북한 문제를 일본과 먼저 의논하는 노골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직도 트럼프와 화성-14형 ICBM 사태에 관해 직접 의논을 못하고 있다. 게다가 시진핑 주석은 문재인 대통령의 사드 발사대 추가배치 조치에 대해 강경히 반대하고 있다. 한국은 지금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미국도 잃고 중국도 잃는 외톨이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미국 내에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목소리가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주한미군 철수 카드 등을 써서 중국의 협조를 얻어내야 한다고 트럼프 정부에 조언한 사실이다. 북한 정권이 붕괴되면 한반도에서 주한미군 대부분을 철수한다고 약속한다면 중국의 북한 핵문제 해결에 협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그 내용이다. 이 상황이 의미하는 것은 한반도 문제를 미중 강대국이 담판 지을 수도 있다는 것이고 한국은 이러한 협상의 들러리 밖에 안 되는 것이다.

북한이 미국전역을 공격할 수 있는 ICBM(대륙간 탄도탄)을 개발한데 대한 미국의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하와이 주는 북핵 공격에 대한 대피훈련을 곧 시작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국 방위가 문제가 아니라 미국 방위가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에게는 지금 두 가지 선택이 놓여있다. 한국과 상의 없이 북한의 핵시설을 선제공격하든가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든가 하는 일이다. 어느 쪽이든 한미동맹의 붕괴를 의미한다. ‘대화로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전제 자체가 빛을 잃고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미국민이 북 핵미사일이 날아올 것까지 각오하면서 한국을 군사 지원할까 하는 의심이 생기는 것도 미국민의 여론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레프코위츠 전 미국 북한 인권 특사 같은 북한전문가도 “미국은 이제 남한 주도의 한반도 통일을 포기해야 한다”면서 북한정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데도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 미국민의 불안이 커지면 트럼프가 북한과 전격적인 비밀협상을 벌이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철 고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