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 영화; 콜럼버스] 그림 같은 자연 속 따뜻한 대화

2017-08-04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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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인 감독·주연의 수작

[새 영화; 콜럼버스] 그림 같은 자연 속 따뜻한 대화

진과 케이시(왼쪽)는 만보와 대화를 나누며 우정이 깊어간다.



■콜럼버스 (Columbus)

★★★★


현대적 디자인의 아름다운 건물들로 유명한 인디애나주의 도시 콜럼버스(부통령 마이크 펜스의 고향)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 번역가와 이 도시에 사는 젊은 미국인 여자와의 대화를 통한 관계와 성격 탐구를 건물들을 조망하면서 만보하듯이 그린 온기와 인간성 가득한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작품이다. 야수지로 오주 영화의 기운을 느끼게 된다.

건축은 치유의 능력을 지녔다는 여자의 말처럼 건물들이 생명체로서 살아 숨 쉬는데 보기에도 아름다울 뿐 아니라 심오하고 사색적이며 매우 지적인 작품이다. 영화 비평가이자 비디오 예술가인 서울 태생의 한국계 코고나다의 감독 데뷔작으로 그가 각본을 쓰고 편집도 했는데 주인공 남자는 한국계인 베테런 존 조가 맡아서 차분하고 감동적인 연기를 한다.

연출 솜씨가 확실하고 작품의 분위기와 보조가 몽환적인데 지극히 간소하고 검소한 영화로 대화와 휴지가 절묘한 균형을 이루면서 작품을 천천히 이끌어간다. 고독감에 잠겨들면서도 끝에 가서 해방감에 고요한 희열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 부드러운 작품을 충분히 수용하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간 번역가인 진(존 조가 한국어를 잘 구사한다)은 콜럼버스에 강연 차 왔다가 갑자기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진 건축학 교수인 아버지를 찾아 이 곳에 온다. 진은 그 동안 가족을 멀리한 죄책감에 빠져있다.

진이 이 마을에서 약물 중독에서 회복한 서민층의 어머니와 함께 사는 20대 초반의 케이시(헤일리 루 리처드슨)와 우연히 만나 대화를 시작하면서 진은 건축에 관심이 있는 케이시의 안내를 받으며 마을의 건물들을 둘러보며 대화를 나눈다. 케이시는 도시로 나가 건축을 공부하고 싶으나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미련 때문에 단조로운 삶을 견디어낸다.

이런 케이시의 단조로움을 덜어주는 사람이 박사 공부하는 냉소적인 남자 친구 개브리엘(로리 컬킨). 한편 진도 아버지를 찾아온 동료 여인(파커 포우지)을 어렸을 때부터 사모해 왔다.

진과 케이시는 몇 날을 함께 만나 걷고 건물을 구경하면서 문화와 환경과 자라온 환경 그리고 세계관과 각자의 꿈에 관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다. 이로 인해 둘은 짙은 우정을 맺게 되는데 그 감정이 사랑의 변두리에까지 이르는 듯한 느낌이 온다. 그리고 케이시는 이 관계 끝에 자신의 단조로운 삶으로부터 구출된다.

조의 너그럽고 여유 있는 연기(본격적인 주연배우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와 리처드슨의 알찬 연기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엄격한 형식미와 함께 자연 속의 두 사람을 찍은 촬영이 극히 아름답고 드문드문 쓴 전자음악과 음향 효과도 매우 좋다.

Nuart(11272 Santa Monica Blvd.)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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