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진정 자식의 행복을 원한다면

2017-07-31 (월) 12:00:00 김성준 콜로라도대 정치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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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부모님과의 갈등 때문에 고통 받는 친구들이 상당히 많다. 어떤 친구들은 자신이 선택한 전공이나 진로를 부모님이 반대해서 고민이고, 또 다른 친구들은 자신이 배우자로 삼고 싶어 하는 사람을 부모님이 탐탁지 않게 생각해서 고민이다. 오로지 ‘자식의 행복’을 바란다는 명분으로 자녀들의 삶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부모님들이 여전히 많은 모양이다.

나는 ‘자식의 행복’에 대한 부모님들의 과도한 확신이 의심스럽다. 아무리 부모님이라고 해도, 자식과는 희망사항이나 취향, 심리적인 보상체계가 다른 타인일 수밖에 없다. 부모님 생각에 좋은 삶이 자식에게도 행복한 삶이라는 보장은 없다. 무엇이 가장 행복한 삶인지는 그 삶의 주인공들이 가장 잘 알기 마련이다.


자녀가 자신과는 다른 부류의 인간일수도 있을 가능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부모님들이, 자식들의 행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물론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속담이 있듯, 자식이 부모 말씀을 꼬박꼬박 잘 듣는 것이 큰 이익이 되던 시절도 있었다. 특히 자식이 살아가며 지나가게 될 경로가 부모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전통적인 신분제 사회에서는, 자식이 경험할 것들을 미리 경험한 부모님들의 지혜가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같이 급변하는 사회에서도 부모님 말씀에 그 정도의 권위를 부여할 수 있을까. 내가 볼 때 기성세대는 새로운 시대의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젊은 세대만큼 잘 모른다. 부모님 세대의 가치관이나 성공의 척도, 행복의 기준 같은 것들은, 요즘의 젊은 세대에게 거의 적실성이 없다. 대학의 전공 선택만 생각해봐도 불과 10여 년 전에 각광 받던 전공과 요즘 주목받는 전공이 다르다. 그런데 부모님 세대의 생각이 무슨 큰 도움이 되겠는가.

게다가 부모님들이 속한 기성세대는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해 최소한의 이해도 없는 경우가 많다.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주관적인 행복감이 어느 정도인지를 묻는 갤럽의 2015년 여론조사에서 한국은 143개국 중 118위를 기록했다. 기성세대가 만든 한국은 눈부신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도가 낮은 나라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세대별 행복도 조사도 부모님들의 편이 아니다. 재작년말 한국일보와 코리아리서치의 공동조사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가장 행복도가 낮은 세대는 60대였고, 50대가 바로 그 뒤를 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불행한 세대에 속한 분들이 자식들의 행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자식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님의 과도한 개입에 섣불리 거부의사를 나타낼 수 없는 이유는 경제적 의존 문제 탓이 클 것이다. 20대가 비싼 등록금과 취업난 때문에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한다면, 30대는 좋은 직장에 취업해서도 혼자서는 해결하기 힘든 과도한 결혼비용과 내 집 마련 비용 때문에 부모님에게 의존한다. 그러나 경제적 지원이 자동으로 부모님들에게 자식의 삶에 마음대로 개입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부모님들의 자녀의 삶에 대한 과도한 개입은 자기 결정권이라는 기본적 인권에 대한 침해이기도 하다. 성인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선택한 바대로 살 권리가 있으며, 결과가 좋건 나쁘건 자기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이 설사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고 해도, 그렇게 해서 자식들이 얻게 될 행복은 미성년의 행복이지 성인의 행복은 아니다.

<김성준 콜로라도대 정치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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