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두 번 학회에 참석하는 데다 개인 일정으로 한국과 미국의 동서부를 가끔 오가기 때문에, 두 달에 한 번은 5-6시간 이상의 장거리 비행기를 탄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비치기 쉽다.
“이번에는 또 어디가?” 라는 질문이나 “7월 중순에는 어디에 있을 예정이야?” 라는 질문들은 내가 얼마나 여행이 빈번한지를 깨닫게 한다.
그런데 이번 스위스 (학회) 여행을 준비하며 이제야 깨달은 바는 내가 그다지 여행을 즐기는 편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사실 내가 혼자 여행을 위한 여행을 한 기억은 많지 않다. 방황이 극에 달했던 20대 초반 어느 날 혼자 제주도로 도망친 것을 제외하면, 항상 학회나 친구 결혼식 등 목적이 분명하거나, 누군가의 제안에 따라가는 여행, 혹은 현지의 누군가가 살뜰하게 챙겨 주는 쉬운 여행들뿐이었다. 그 흔한 대학생 유럽 배낭여행도 경험하지 않았다는 것은 내가 얼마나 여행에 비 능동적인 가를 반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여름 나는 학회 발표준비를 일찌감치 마치고, 미리 스위스에 도착해서 1주일간 그 아름답다는 나라를 열심히 둘러보리라 다짐하고 5월에 비행기 표를 준비했다.
그런데 그 여행 준비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혼자 정보를 찾고 계획하고 실행해야 하는 여행이고 보니, 일은 한쪽에 쌓아 놓고 머릿속에 여행의 큰 그림이 그려질 때까지 수 시간 인터넷 서핑만 하게 되었다. 정확히 6시간 동안 꼼짝하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웹서핑만 하다보니 나중에는 정말 멀미가 날 것 같았다.
우선 좋다는 곳이 너무 많았다. 다들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고, 멋진 사진들을 찍어 올려 유혹한다. 어느 산업공학 전공자가 만들어 놓은 엑셀 시트를 이용해 교통 패스를 사는 것이 경제적인지 패스를 산다면 어떤 옵션이 좋은지 찾기 시작해서, 경치 구경을 위해서는 기차의 좌측이 나은지 우측이 나은지, 어느 기차는 예약을 꼭 해야 하는지 등등. 융프라우 가는 기차는 또 따로 구매하는데 할인권이 있으니 꼭 챙겨 가라는 둥 휴대폰 유심 정보에, 환전 정보에, 기차역 사물함 정보까지 정말 다들 대단했다.
여행은 알면 아는 만큼 느끼고 배운다지만, 나는 거대한 정보의 바다에서 허덕이다가 마지막으로 날씨 확인하고는 털썩 주저앉았다. 내가 머무는 동안 스위스는 단 하루를 제외하고 일주일 내내 비가 올 거라는 예보였다. 혼자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삶에 대해 책으로, 글로, 정보로 공부해서 잘 살 것 같으면, 왜 우리가 사는 게 팍팍하다고들 하겠나 싶었다.
학회 준비 일이 쌓여 정신이 없는 와중에 멀미날 정도로 스트레스 받으며 완벽하게(?) 준비해 가서 무슨 대단한 여행을 하겠다고… 어차피 비올 건데…생각하니 스스로 우스워졌다.
20대에는 시간은 많은데 여행할 돈이 없고, 30대에는 돈은 있어도 시간이 없다고 한다. 언제 나는 여행을 위한 여행을 여유 있게 할 수 있을까.
취리히 공항 근처 한 호텔에서 폭풍우 몰아치는 빗소리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여유는 마음 속에 있는 거잖아요 라고 너스레를 떨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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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승/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