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검정의 치유

2017-07-08 (토) 12:00:00 장은주(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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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히 눈앞에 놓인 텔레비전을 보면서 검정 색을 생각한다. 몇 년 동안이나 이 자리에 있었는지, 관심조차 없던 텔레비전의 검정 색이 예기치 않은 소식을 접하고 유난히 나에게 다가든다.

2009년에 대단히 성공을 거두었던 영화 블랙에서 자식이 장님에 청력까지 잃게 되었다는 절망적인 소식과 함께 처절하게 절규하는 어머니의 뒤엔 검정 색의 벽이 놓여 있었다. 검정 색하면 빛이 없는 상태의 먹과도 같은 색의 일종이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세상과도 같은 색, 바로 눈만 감으면 언제나 볼 수 있는 색.... 우리는 항상 블랙을 접하고 있었지만, 삶과 죽음을 따로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그 색을 사실 별로 환영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검정 색은 아픔을 드러내는 색이기 때문이다.

모든 색들을 다 덮어버릴 수 있는 검정 색은 인간의 희노애락의 갈등마저 없던 것으로 만들어 무의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나는 물감을 섞어 색을 만들 때 검정 색을 잘 쓰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인상주의의 화가들이 빛이 없는 그림자를 그릴 때도 무채색을 쓰지 않고 컬러를 쓴 것에서 영향을 받았던 것과, 순도 높은 색을 표현하기 위해서도 더욱 그랬다. 검정 색은 조금의 양을 사용해도 색을 탁하게 만들기가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미술과 생활에서 사람들은 검정과 회색의 무채색을 이용하여 많은 모노크롬의 회화와 생필품을 창작하기도 했다. 그래서 검정은 모든 색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게 되었다. 검정은 이제 더욱 친숙하고 오히려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그렇다. 검정은 절망만을 드러내는 색이 아니라 삶을 재창조하기 이전의 색이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빛으로 가기 전의 준비과정이다.

때론 마음의 어둠을 걷어 내기 위해선 검정 색을 쓰는 것이 필요하다, 가슴에 들어 있는 먹물을 쏟아내어야 한다. ‘자궁에서 시작하던, 땅에서 시작하던 생명의 시작과 끝은 모두 어둠이다. 언젠가 우리는 어둠을 깨치고 빛에 당도할 것이다,,,,’내일은 검정의 그림을 그려야겠다. 오늘은 잠시 마음을 흑색 속에 버려두고 내일은 꼭 어둠을 밀어 낼 것이다. 새로운 빛에 당도하기 위해서!

<장은주(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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