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nglish for the Soul] equalizer / 이퀄라이저

2017-07-08 (토) 12:00:00 최정화 [커뮤니케이션 학 박사/영어서원 백운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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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th the great equalizer treats everyone as the same.
저 위대한 이퀄라이저 죽음은 모든 이를 똑같이 대하느니라.

과연 그럴까? 결국 모두 죽으니, 사는 동안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지냈건 결국 끝은 마찬가지? 마침내 결론은 죽음 아닌가! 그렇게 시인은 노래하네요. 아침 강아지 산보 중 괜시리 영어 단어 'equalizer'[이퀄라이저]가 심중에 맴돌며 '썩소'를 지으며 기억난 유머 하나.

이른바, 여성의 나이별 화장 우스개. 물론, 화장(化粧)은 곱게 꾸미고 맵시를 낸다는 뜻. 그런데, 끝 부분에 이르면 미상불 '안티클라이맥스'[anticlimax, 점강(漸降)]의 절정에 이르더라? "10대는 치장, 20대는 화장, 30대는 분장, 40대는 변장, 50대는 위장, 60대는 포장, 70대는 환장, 그리고 80대는 끝장!” 허~참! 제 아무리 절세가인도 결국 나이라는 이퀄라이저(equalizer)를 비껴갈 미인은 없는 법! 마침내, 다 똑같아질 것을! 치장부터 끝장까지, 이게 뭡니까? [김모 교수 성대모사(模寫)] 이퀄라이저(equalizer)는 말 그대로 '이퀄'(equal)하게 만드는 것. 영어 사전을 보니 이런 우리말 번역이 나옵니다. "동등[평등, 균일]하게 하는 사람[것]." 전문용어론, 평형장치/균형장치, 또 전기에선 균압선이 되고, 속어로 쓰면 무기도 됩니다. 이소룡같은 무예의 달인이 한껏 재주(?)를 부려도 동네 깡패 총 앞에선 과연 속수무책! 휙!휙!휙!...그러나, 빵! 슬랩스틱 코미디의 한 장면으로 보는 또 한 편의 '안티클라이맥스.'


Death the great equalizer treats everyone as the same.
Without respect for anyone or creatures great or small.
저 위대한 이퀄라이저 죽음은 모든 이를 똑같이 대하느니라.
크고 작은 그 어떤 인물이나 피조물에 상관치 않느니라.

잘났던 못났던, 크던 작던, 배웠던 못 배웠던 ...... 등등 그 어떠한 수준/레벨에 상관치 않고, 생노병사의 어길 수 없는 수순은 어느 누구에게도 결국 이퀄라이저(equalizer)! 마침내 '망우'(忘憂)하여 '근심을 잊고' 망우리에 묻히면 다 그게 그거 아닌가. 솔로몬 왕이 인생의 단맛을 지겹게 즐긴 끝에 결국 내뱉은 말 또한 '저 위대한 이퀄라이저'의 그림자에 가위 눌린 탓이 아니겠는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 1:2] Vanity of vanities, vanity of vanities; all is vanity.

그래서 또 생각난 유머. 여자의 나이별 '평준화'를 확실하게 까발린 '잔인한' 유머! "40대: 지식의 평준화 [많이 배운 여자나 못 배운 여자나]. 50대: 미모의 평준화 [예쁜 여자나 못난 여자나]. 60대: 자식 잘 둔 여자나 못둔 여자나. 70대: 남편 있는 여자나 없는 여자나. 80대: 재산이 있건 없건 [재산 평준화]. 90대: 집에 누워 있건 망우리에 누워 있건 [수명 평준화]." 결국 그 누구도 이퀄라이저(equalizer)를 피해 갈 순 없는 법!

맞습니다. 나이 먹고 병들어 마침내 죽는 인생. 죽음은 정녕 'the great equalizer'임에 틀림없으리라. 맞습니다, 맞고요, 그런데 ...... 진짜 죽음은 '저 위대한 이퀄라이저'로서 인생의 종지부를 확실하게 찍는 것일까? 썰렁 개그로 썩소를 지으며 짐짓 이런 질문을 들이미는 까닭은? 왠지 죽음이 끝이 아니란 생각이 짙기 때문.

사람마다 제각각의 세계관에 따라 '사후세계'란 고견(?)을 나름 갖추고 있으리라.물론, 그런게 어디 있느냐는 용감한자들부터, 돌고도는 윤회(輪廻)를 믿는 이들도있을 것이며, 또 '의인의 부활과 악인의 둘째 사망'까지 믿는 이들도 꽤 있으리라.

시인은 '저 위대한 이퀄라이저 죽음'이 진짜 모든 이를 똑같이 평준화하는 균형자로 노래하고 있지만, 기실 육신의 죽음 뒤에 벌어질 거룩한 사건은 논외로 하고 있네요. 진짜 깨닫고 보면, 죽음은 '이퀄라이저'가 아니며, 'equalizer'의 실체는 '믿음'[faith]인 것을 감지하게 됩니다.

여자의 치장이 결국 '끝장'이 된다고 해도, 사람 몸의 죽음은 결코 '끝장'이 아닐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침 산보 길, 내 앞으로 종종 걷는 강아지의 뒷모습에 그런 믿음이 묘하게 점철되며 북가주의 초여름 하늘이 유난히 파래집니다. Shalom!

<최정화 [커뮤니케이션 학 박사/영어서원 백운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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