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인(死因)도 결정하는 촛불민심

2017-07-02 (일) 11:10:57 박인영 신장내과 전문의 게인스빌,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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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경 한국에서 대규모 시위로 번질 뻔 했으나 탄핵사태에 가려져 최근까지 잠잠했던 고 백남기 씨의 사인논란이 정권이 바뀌자마자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결말로 끝나 버렸다.

애초에 직접사인으로 급성신부전이나 고칼륨증을 기록했으면 의학적으로 문제가 없었겠으나 주치의였던 서울대학병원 신경외과(당시) 과장 백선하 교수의 감독하에 치료를 담당하고 있었던 수련의가 내과적 사인에는 경험이 부족해서인지 사인이 될 수 없는 ‘심폐정지’를 직접사인으로 적음으로써 의대생들과 졸업생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이같은 의학적인 의문이 제기되었을 때 주치의였던 백 교수가 규정대로 정정했더라면 의학적인 측면에서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백 교수는 물의의 책임 때문에 과장직으로부터 해임되는 굴욕을 당하면서도 사망원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고치라는 유족 및 시민단체들의 압력에 굴하지 않았고 지금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다.


살인으로 의심되는 사건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부검을 함으로써 사망원인을 의학적으로 구명하는 것임에도 법원으로부터 ‘조건부’ 영장을 발부받은 경찰은 유족과 시민단체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치자 부검의 강제집행을 포기하고 말았다.
헌정사상 초유의 탄핵을 이끌어냈던 촛불시위대에는 고인이 공권력의 폭력에 의해 타살 당했음을 주장하는 단체가 어김없이 등장했었고 촛불세력의 지지에 의해 대통령이 된 문재인 (당시)후보는 집권하면 백남기 씨 사망사건의 진상을 낱낱이 밝힐 것을 공약으로 약속했었다.

대선 전까지 ‘합병증에 따른 ‘병사’라는 판단을 유지해 왔던 서울대병원은 감사원에 의한 기관운영감사가 시작된 6월14일 바로 그 날에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함으로써 이 논란의 결말을 지었는데 이 조치는 서울대병원 역사상 전례가 없는 것으로 주치의 백 교수의 권한을 교묘하게 침해한 것이며 의학적으로도 타당하지 않은 것이다.
서울대병원은 전에 교통사고로 입원한 후 여러 해가 지난 후 백남기 씨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사망한 다른 환자의 사망을 ‘병사’로 분류한 바가 있는데 이 두 환자의 본질적인 차이는 백남기 씨의 경우는 정치적인 이슈가 됐고 보이지 않는 모종의 힘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한국을 휩쓰는 촛불민심의 광풍은 이제 사망원인도 삽시간에 바꾸어 버리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존재로 군림하고 있다.

<박인영 신장내과 전문의 게인스빌,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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