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하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묻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어떻게 선진적인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성차별적이고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일삼는 포퓰리스트가 지도자로 선출될 수 있었는지 궁금해 한다.
되짚어 보면 트럼프의 등장 이전에도 위험신호는 있었다. 정치학자들이 이를 미리 알아채는데 실패했을 뿐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각종 제도와 기관들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묻는 갤럽의 여론조사에서, 긍정적으로 답변한 미국인들의 비율은 2005년 이래 40%를 넘어본 적이 없다.
많은 이들이 정상적인 정치적 과정과 절차로부터 스스로가 소외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보기에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는 이미 오래 전에 망가진 것이다.
이처럼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신뢰가 낮을 때, 사회는 음모론에 취약해지기 마련이다. 음모론은 트럼프 같은 포퓰리스트들의 주된 무기다. 포퓰리스트들은 시민들이 정치로부터 소외되는 까닭이, 공식적 정치제도를 실제로 움직이는 배후세력의 음모 탓이라고 주장한다. 트럼프는 배후세력으로 기성정치인들과 흑인들, 무슬림과 멕시코 이민자들, 진보적 사회운동가들을 지목했다.
소위 ‘억압받는 백인들’은 트럼프의 음모론을 열광적으로 지지했다. 트럼프가 음모론을 뒷받침할 별다른 근거를 내놓지 못해도 지지자들에게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이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목소리가 지금까지의 정치판에서 외면당해왔다는 사실만을 중요하게 여겼다.
언론인들이나 전문가들이 아무리 증거를 들어가며 트럼프의 주장이 사실관계에서 벗어났다고 지적해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언론인들과 지식인들을 ‘망가진’ 시스템의 일부라고 싸잡아 매도하며 그들을 믿지 말 것을 종용하는 트럼프의 트위터 활동이 훨씬 효과적이었다.
포퓰리스트들은 언제나 제도와 시스템이 망가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시민들을 진정으로 대변할 수 있는 시스템의 재건에는 관심이 없다. 법과 민주주의적 절차는 망가진 시스템의 일부이기 때문에 더 이상 존중할 필요가 없다. 포퓰리스트들은 오로지 자신들만이 진짜 시민들의 대변자이므로, 법과 절차를 넘어서는 힘을 달라고 유권자들에게 호소한다.
트럼프를 당선시킨 미국처럼 ‘민주주의적 절차에 대한 신뢰‘라는 공공재가 파괴된 사회에서는 음모론과 포퓰리스트들이 득세를 하게 된다. 요즘 이것이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서 두렵다. 이탈리아와 헝가리,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의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도 포퓰리즘를 표방하는 정당과 정치인들이 세를 넓혀가고 있다.
과연 한국 사회는 포퓰리즘에 잘 면역이 되어 있는가? 내 대답은 부정적이다. 보수 진영에는 아직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북한과 친북세력이 합동작전을 벌인 결과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한편 진보 진영에는 지난 정부의 실권자가 세월호를 고의로 침몰시켰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뿐이 아니다. 큰 선거가 끝날 때마다 패배한 진영에서 선거결과가 조작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처럼 제도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기는 반면, 음모론은 이념이나 세대를 막론하고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다.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이 정부나 언론이 내놓는 정보보다, 온라인메신저나 SNS를 통해서 유포되는 비공식적 정보를 더 신뢰하는 것처럼 보인다.
음모론을 잘 이용하는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나타나서, 이미 망가진 민주주의 제도 대신에 자신에게 권한을 달라고 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한국의 언론과 정치인들, 지식인들과 대중들은 포퓰리즘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을까? 민주주의적 제도와 절차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지혜를 짜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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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준 / 콜로라도 주립대 정치학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