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 모 곡

2017-05-27 (토) 김덕환 / 실리콘밸리 부동산 중개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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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 에세이

벌써 15년 전이다. 베이커스필드에 이르러 LA로 연결되는 산길에 접어들 때까지 광활한 대평원을 거의 170마일 직선으로 끝없이 내달려야 하는 5번 프리웨이를 나는 어머니와 단둘이 달렸다.

어머님과 모처럼 함께 하는 자동차 여행이라는 느낌은 특별했지만, 그 길이 어머님과 영원히 이별하는 길일 줄 나는 예감조차 할 수 없었다. 기나긴 길을 그저 이런저런 집안일, 미국학교에 막 적응해 가는 두 손자 이야기, 직장이야기 등에 관해 어머님과 도란도란 대화를 이어갔을 뿐이었다.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며 세계경영을 추구하던 대기업 본사 안 은행 점포를 맡아 기업금융을 담당하던 내가 캘리포니아 한인은행에 채용돼 실리콘밸리에 정착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어머니가 미국으로 가버린 셋째 아들네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자 바로 위의 형님이 어머님의 미국여행을 주선해 주었다.


어머니는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사명대사가 수도한 곳으로 유명한 천년고찰 표충사가 위치한 천황산 기슭에 통나무집 전원주택을 짓고 사셨다. 30대 초반부터 10여년 간 명절 때마다 어머니를 찾아뵈러 낯설지만 아름다운 그 산골 마을로 매번 15시간 이상 차를 몰고 내려가던 귀성 길은 내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어머니는 산골마을에서 혼자 사시느라 적적하시니 순이라는 진돗개를 키우며 각별한 사랑을 쏟으셨는데, 미국여행 중 행여 순이가 배를 곯을까 이웃집 영감님에게 아침저녁으로 먹이를 넣어주도록 부탁하신 모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거나하게 약주를 드신 영감님이 백구에게 밥을 주며 어르시다 개에게 손을 물려 병원에 입원하였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어머니가 미국으로 오신지 열흘도 안 되었을 때였다.

주변에 같이 어울릴만한 분도, 대중교통도 거의 없는 이역에서 어머니를 집안에만 계시도록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출근길에 어머니를 산타클라라에 있는 노인봉사회에 내려 드리고 퇴근 때 모시고 함께 귀가하곤 했다. 워낙 사람을 좋아하시는 어머님은 노인봉사회에 가신 첫날부터 다른 할머니들과 재미있게 어울리시며 발군(?)의 실력으로 화투판을 장악하셨는데, 그날 따신 돈은 물론이요 가져가신 돈도 거의 전부 푸짐하게 간식으로 내놓으셔서 인기최고의 할머니가 되셨다.

하지만, 출퇴근을 함께 하며 어머님께 효도할 수 있었던 그 귀한 시간이 그렇게 빨리 허무하게 끝나게 될 줄이야…….

이웃집 영감님이 입원하셨다는 소식에 어머니는 부랴부랴 귀국길에 오르셨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 에서는 당일 비행기가 오전에 출발한 뒤라 밤 비행기가 있는 LAX로 가느라 그 끝없는 캘리포니아의 대평원을 남으로 내달린 것이었다.

그리곤 4년 뒤, 미국에서 삶을 일구느라 한번도 한국 방문을 하지 못한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어머니의 별세 소식을 누이에게 전해 듣고는 망연자실 한국행 비행기를 탔던 것이다.

봄도 지나가고 이젠 여름의 초입이다. 너무 건강해 절대 아플 것 같지 않았던 나는 뜻하지 않은 차 유리 고장으로 하루 동안 찬바람을 쐰 끝에 그만 독감에 걸리고 말았다. 낮시간 용 밤시간 용 물약을 네 시간마다 번갈아 마시며 고투를 벌였더니 독감은 꼭 열흘이 지난 이제야 떨어질 기미를 보인다. 식은땀을 흘리고 콜록콜록 거리노라니 따스한 어머니의 손길이 그리워 눈물로 베게가 젖었던 새벽이었다. 어머님은10여 년만에 내 꿈에 찾아와 볼에 따스한 입맞춤을 해주시곤 등을 토닥여 주셨다.


“힘내라, 모든 게 잘 될 테니까.”

정말 감기도 떨어졌고, 일에도 작은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5월 어버이 달이 지나가고 있다.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중략) 품어가 반길이 없으니 글로 설워하노라.”

조선중기 가사문학가 박인로의 안타까운 사부모곡이다. 벗들이여,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김덕환 / 실리콘밸리 부동산 중개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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