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엄마 생각

2017-05-02 (화) 12:00:00 정고운(패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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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추수감사절 즈음, 둘째를 낳았다. 한국의 친정 엄마가 오셔서 산후조리를 해 주셨다. 낮이면 맵지 않은 음식을 정성스레 만드시고, 밤이면 자고 있는 나 대신 아이 기저귀를 갈아 주셨다.

첫째가 낮동안 저질러 놓은 난장판도 할머니 손에 말끔해졌다. 하루가 다르게 더 무거워지는 우량아 둘째를 호떡같은 녀석 이쁘다며 늘상 안아주시고, 샘 많은 첫째가 투정을 부려도 웃는 낯이셨다. 세상에서 제일 바쁜 할머니였다. 가끔 운좋게 두 아이가 동시에 잠들면, 엄마와 나에게 모처럼의 휴식이 찾아왔다.

그러면 우리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바를 하나씩 물고 온갖 수다가 난무했다. 서울의 아이스크림 가격, 우리 자매 어린 시절, 별것 아닌 옛날 이야기들과 친척들의 자잘한 근황들까지. 나는 특히 엄마와 외할머니의 이야기가 제일 좋았다.


엄마는 우리 집에 와 계시는 내내 아흔이 훌쩍 넘으신 외할머니가 걱정이었다. 심지어 하루는 한밤중에 꿈자리가 나쁘셨는지 엉엉 울며 일어나시더니, 당장 할머니께 연락해봐야 한다고 하셨다. 새벽 두시가 넘었는데, 엄마와 나는 할머니와 연락이 닿을 때까지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개꿈이었다며 이불 속에서 킬킬대며 웃었지만, 실은 마음속 깊이 안도했다.

둘째 100일 무렵, 엄마는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아이들과 씨름하시느라 힘드셨는지, “이제 나 안온다!” 하셨다. 평생 죄송해 하며 살 예정이다. 미국에 온 지 벌써 십년, 나는 엄마가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지 못했다. 여전히 여리고 고운 엄마와 달리, 서른이 넘도록 말괄량이인 딸이라 섬세함이 부족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도 이렇게 멀리 살아야 할텐데, 무얼 해야 효도가 될까.

어젯밤, 첫째를 재우려는데 아이가 잠결에 “할머니 좋아” 한다. 딸아이 얼굴을 보며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어느 먼훗날, 나도 꿈에 우리 엄마가 나타나 엉엉 울게 되는 것은 아닐까? 먼 곳의 엄마가 걱정돼 잠도 못자겠지. 어쩐지 울고 싶은 기분이 되어, 엄마가 좋아하시던 아이스크림을 하나 꺼내 먹었다. 엄마가 보고싶다. 전화라도 자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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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고운씨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경영학과 의류직물학을 전공하고 2007년 초 뉴욕 의류회사에 패션 디자이너로 취직해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뉴욕과 필라델피아에서 일했으며, 2012년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정고운(패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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