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혼신을 다할 권리

2017-04-24 (월) 노유미 /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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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그리고 왕성하게 글을 쓰고 싶어하던 몇년 전의 나에게 한 지인이 이런 충고를 했었다. “목적하는 분야에서의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뻔뻔하고 이기적이어야 한다.”

이해는 할 수 있었지만 그 충고를 따르지는 않았다.

그간 일상과 주위의 많은 이들의 일들로 항상 분주했고, 그 결과 여전히 당시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충고를 해주었던 지인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하고자 하는 일에 몰두하여, 그에 따른 성과를 차곡차곡 쌓아 나아가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는 열망마저 많이 누그러진 기분이다. 당시처럼 간절히 꿈을 이루는 삶을 동경하고 있지 않는 듯하다.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분석일지는 모르겠지만, 현재의 나는 꿈보다 하루하루 처리하고 해결해야할 일들에 매몰되어 있다. ‘꿈’이라는 꿈같은 단어를 떠올릴 여력이 없어진 것이다.

이런 현실이 자각되는 지금, 서글픈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꿈보다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살아온 지난 날들에 대한 후회는 없다. 그와 같은 삶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니, 사실 그 삶도 나 자신을 위한 삶과 다를 바가 없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렇다고 열망이 완전히 사그라진 것은 아니다. 비로소 나 자신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피동적이든 능동적이었든 스스로의 결정에 책임을 져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이런 다짐에도 불구하고 눈길이 가는 책이 있다. 바로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데이빗 시버리의 신작 <나는 뻔뻔하게 살기로 했다>이다.

그는 이 책에서 “영국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 또한 여성이 자유의 문을 여는 데 필요한 것은 ‘자기만의 방’”이라고 했다며, “몰두할 가치가 있는 일에 인간은 혼신을 다할 권리가 있으며, 그럴 때에는 성공 여부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이것이 바로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의 삶”이라고 강조했다.

여성의 자아실현에 자주 인용되긴 했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이 말은 일말의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것이 사실이다. 과연 어떠한 일이 ‘몰두할 가치’가 있을지는 온전히 판단하는 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삶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꾸준히 분주할 것이며, 간혹 잊고 살았던 꿈을 또다시 꾸고자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닥쳐오는 일상의 물살에 휩싸인 채 흘러버린 시간을 푸념하듯 원망하며 또 하루를 맞이할 것이다. 그러나 역시 그 때에도 지난날의 노력과 수고를 후회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단지 개인적인 걱정은 이것이다.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자아실현과 현실의 괴리가 혹시 게으름이나 실패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울프의 주장에 굳이 ‘해석의 여지’를 운운하며 , 오늘도 훗날로 미루는 자아실현의 꿈이 혹 스스로 세운 거대한 핑계의 벽 뒤에 숨겨져 있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 말이다.

어떠한 삶을 살아야할까.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하는 근본적인 고민들 사이에서, 불변하는 사실 두 가지를 다시금 되뇌어본다. 누구도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으며, 시간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노유미 /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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