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갈까? 말까?
2017-04-06 (목) 12:00:00
송미영(모퉁이돌 한국학교 교사)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익숙하다. 무슨 말을 한 번 하기 위해서는 내 머리에서 생각의 생각을 걸러서 큰 맘을 먹어야 한 마디 할 수 있다. 말하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지 말이다. 복잡한 교통 질서와 안전을 위해 신호등이 있다. 빨강 초록 그리고 가운데는 황색등이 있어서 운전중 초록등에서 황색등으로 바뀔 때 운전자의 민첩함과 지혜로움이 가장 많이 필요한 순간이다. 긴 대교를 지날 때면 가슴이 철렁하면서 양어깨와 손발에 힘이 쫘악 빠지면서 대교 아래로 떨어질까봐 무서워할라치면 손에 식은 땀이 배어 있곤 하였다. 이러한 일은 버스를 타고 갈 때나 차를 운전하고 갈 때나 남편이 운전하는 차의 옆에 앉아서 고가도로를 지날 때도 늘 같았다.
아주 오래전 나의 사랑하는 동생이 탄 버스가 한강대교로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다. 그로 인해 세상을 먼저 떠났다. 나도 함께 그 버스를 탈 뻔했었는데...라는 생각과 죄책감이 나를 무척 힘겹게 했다. 나는 지금도 수영을 잘 하지 못한다. 사실 수영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물 속에 들어가면 무척이나 불안하고 무섭다. 꼭 죽을 것만 같은 생각이 몰려 온다. 내가 어렸을 적에 우물에 빠찐 것을 아버지가 건져 내셨다고 들었다. 나의 성장 과정에서의 일들이 트라우마로 자리잡고 있거나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모든 것을 다 표현할 수 없지만, 나는 충분히 자신감이 없었고, 나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을 감지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내마음의 황색등인 것이다.
재빨리 가든지 서든지 망설이게 하는 순간이다. 용기라는 엑셀을 밟기로 결정하였을 때 내 입으로 아픈 곳을 말할 수 있었고 그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급하지 않게 브레이크를 밟은 나는 마음의 변화에 잘 대처할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을 충전할 여유로움을 소유하게 되었다. 내 안의 고통을 끌어올려 밖으로 토해내는 일은 무척 아프고 힘겨운 일이었기에 나 스스로 참 잘했다고 쓰담쓰담 해 주었다. 말을 많이 듣기도 하지만 말도 많아진 것 같다.
말을 많이하면 실수를 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고가도로를 탈 때 조금은 가슴이 두근거리지만 신나게 잘 지나가고 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영은 배우고자 한다. 지금 쭉쭉 직진이었던 초록등이 황색등으로 바뀌고 있다. 재빨리 갈까? 말까? 엑셀을 밟을까? 브레이크를 밟을까?
<송미영(모퉁이돌 한국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