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버려야 할 것
2017-04-01 (토) 12:00:00
김희원(버클리문학회원)
주변에서 나보다 연장자인 분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큰 집을 줄여서 작은 집으로 이사했는데, 집의 크기가 줄어드니 청소도 쉽고 집안에서 동선도 짧아져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이사하면서 어지간한 물건들은 전부 버렸다며 살림이 단출해지니 속이 다 후련하다고 하셨다. 아직 남편이 은퇴하려면 멀었으니 이사까지는 못 가더라도 이참에 나도 필요 없는 물건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엔터테인먼트 장을 여니 비디오테이프가 한가득하다. 이민 오고 나서 몇 년 동안은 아이들이 원어민 영어 발음을 익힐 수 있도록 새로 나오는 디즈니 뮤비 비디오테이프는 거의 사들였다. 몇 번씩 보고 또 보면서 부모가 도와주지 못하는 영어 공부를 시켜준 고마운 물건들이지만 이제는 VCR 시대도 아니고 아까워도 버려야 할 쓰레기가 되어버렸다.
두 번째 아이템은 게임기와 게임 CD이다. 닌텐도 게임 큐브부터 플레이스테이션 등, 온갖 게임기는 다 있고 게임기에 따라 게임 CD가 다 다르므로 종류대로 게임 CD가 또한 가득하다. 공부보다는 비디오 보고 게임을 하는 것을 좋아했던 아들은 학교에서 C만 받아도 평균이라며 좀더 분발하라는 나에게 제 나름의 논리를 펴곤 했었다. 뒤늦게 철이 들어 남들보다 힘들게 원하는 길을 찾아야 했지만, 그래도 그 원동력이 되어 준 것이 그토록 열심히 해댄 게임인 것을 생각하면 이 세상에서 범죄만 아닌 모든 경험은 다 자산이 되는 것 같다.
다음으로 버릴 것은 옷이다. 딸은 지금도 고등학교 때의 몸매라 그동안 버리지 않고 사들이기만 한 옷들이 얼마나 많은지 정리를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이제는 구식이어서 안 입는 옷들에서 내게 맞으면 추려놓은 옷이 한 보따리, 가격표도 안 뗀 옷은 아까워서 못 버리고, 또 내 옷 중에서도 몸무게가 늘었을 때 입었던 옷들은 혹시 다시 살이 찌면 입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버리려다 다시 걸어두고 남편의 젊은 시절 입었던 양복들은 지금 입기엔 너무 작은데도 멀쩡해서 버릴 수가 없고, 갖은 핑계를 대며 버리기를 주저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기부 물품을 수거해가는 트럭을 이번에도 또 놓쳐버렸다. 일 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은 버리는 것이 정리의 원칙이라고 한다. 내게는 필요 없지만 다른 이에게는 유용하게 쓰일 수 있도록 옷 정리를 마무리하여 다음번 트럭 방문일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기부를 해야겠다.
<
김희원(버클리문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