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옷에도 생명이

2016-12-20 (화) 03:57:11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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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패션의 역사가 그러하듯이 우리 옷의 역사에도 우리 민족이 존속하는 동안 수많은 옷이 생성되고, 입혀지다가 사라졌다. 남자 한복의 기본은 바지와 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조끼와 마고자를 덧입는 것인데, 그중 조끼와 마고자는 원래부터 있던 우리 옷이 아니었다. 조선 말엽에 외래로부터 전해진 것이 당시 한국인의 기호와 맞아서 근현대한복의 일부가 된 것이다.

주머니가 달린 양복 조끼가 조선에 소개되자 조선의 남자들은 담배 등 일상 용품을 넣어 다니기 편리하다는 이유로 한복 위에 서양식으로 만든 조끼를 다투어 입었다.허리 춤에 찬 전통주머니는 그냥 ‘주머니’라 부르면서 조끼에 달린 포켓은 오랑캐 호‘胡’ 자를 붙여서 ‘호주머니’라 불렀다.

그런가 하면 마고자는 청나라의 마구아(馬褂)에서 왔다. 마구아는 원래 만주족이 말을 탈 때 덧입은 겉옷이었는데 대원군이 만주 보정부에서의 유거 생활로부터 풀려 나와 1887년 귀국할 때 입고 돌아온 뒤조선에 널리 확산되었다고 무라야마 지쥰(村山智順)이 쓴 <조선의 복장(1927)>에 기록되어 있다.


1970년대 국어 교과서에도 실린 수필, 윤오영의 <마고자>에는 “마고자가 중국의 마구아에서 왔지만 그 마름새나 모양새가 한국 여인의 독특한 안목과 솜씨를 제일 잘 나타내는 우리의 독특한 옷”이며 “남자의 의복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호사”로 “밀려들어 온 남의 문화를 우리의 전통적인 안목과 솜씨로 고쳐 이룩한 새로운 우리 문화”라고 마고자의 한국화된 측면이 잘 서술되어 있다.

이렇게 근 130년을 우리 옷으로 사랑을 받았던 조끼와 마고자는 이제 서서히 사라지고 대신 ‘배자’를 택하는 젊은 세대가 증가하고 있다. 배자는 조끼가 들어오기 훨씬 이전부터 있었던-단지 주머니만 없었던- 소매 없는 덧옷이었다.

양복의 영향으로 조끼가 배자의 자리를 차지하자 잠시 사라졌는데, 이제 한복을 실내에서 주로 입고 조끼 주머니에 물건을 휴대할 필요도 없어지니 조끼를 밀어내고 다시 그 자리를 차지했다. 더불어 마고자까지 생략하면서 21세기의 남자 한복 일습을 간편하게 변모시켰다. 겉옷화된 배자가 앞으로 겪어갈 변천이 자못 궁금하다.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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