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자투고]미운 오리새끼

2016-12-08 (목) 03:50:33 정민규(샌리앤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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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아침 일찍 LA로 떠났다. 작년에 아침밥 챙겨 먹고 느긋하게 출발했더니 5번 프리웨이 교통체증으로 9시간 이상 걸렸다면서, 곰돌이보다 못생기고 부리토보다 뚱뚱한 메디(강아지)를 뒷좌석에 싣고 자기 남편과 함께 떠나 버렸다.

몸도 성치 않는 엄마가 밤늦게까지 끓인 육개장에 밥 한술 뜨고 가라 해도 괜찮다, 그러면 싸줄테니 갖고 가서 먹어라 해도 됐다고 이중창을 해댄다. 순간 아내의 눈가에 서운함이 묻어난다. 한 솥이나 끓였는데... 덕분에 맛있는 육개장을 일주일 내내 먹게 생겼다.

지난 여름 결혼하고 처음 오는 친정 나들이를 추수감사절날에 맞췄다. 작년에는 귀찮아서 하지도 않았던 크리스마스 트리를 우리 동네에서 제일 먼저하고 타겟에 가서 전구가 반짝거리는 엄마오리 아기오리 세마리 세트도 난생 처음 사서 앞마당에 두었다(아빠 오리는 아직 일터에서 돌아오지 않았나 보다). 차에서 내리면 바로 보고 깡총깡총 뛰겠지 기대했지만 애들은 떠날 때에도 오리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애들이 자던 방을 들어가니 처음처럼 깨끗하게 정리되어 마치 낯선 손님이 묵고 간 것 같다. 결혼식 축하연에서 아들을 하나 더 얻었다고 말해서 신랑측 친지들의 박수를 받았는데, 아무래도 딸만 빼앗긴 것 같다. 여기서 LA까지는 자동차로 6시간, 마음만 내키면 언제라도 달려갈 수 있는 거리인데도 이렇게 마음 한구석이 횡한데... 어쩌다 한국 들려 부모님 뵙고 미국에 돌아올 때 슬픈 표정 한번 짓지 않았던 자식을 또다시 멀리 떠나보내는 내 부모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이제 한 분은 밤하늘의 별이 되어 더이상 뵐 수도 없는데...

어둔 밤 겨울비 속에 가게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가장 먼저 맞이하는 엄마오리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늦게 딸아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침 잠 깨어 맥도날드에 들려 머핀을 먹으면서 후회했다나... 육개장 먹고 올 걸...

<정민규(샌리앤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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