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워터게이트
2016-12-01 (목) 09:38:29
1972년 6월 워싱턴 DC의 워터게이트 건물에 잠입한 5명의 범인 검거로 시작된 워터게이트 사건이 대통령을 쫓아내는 대형 스캔들로 비화한 것은 언론의 탐사 보도 때문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칼 번스타인과 밥 우드워드 기자는 훗날 마크 펠트 연방 수사국 부국장으로 밝혀진 제보자의 증언을 토대로 잡범으로 보이는 이들이 닉슨 행정부 고위층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밝혀냈다.
이에 관한 조사가 계속되는 와중에 연방 의회에서 백악관에 비밀 녹음 장치가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 테이프의 제출 명령을 받은 백악관은 테이프 대신 녹음 내용을 적은 서류를 전달했고 워터게이트 침입 사건 직후인 1972년 6월 20일 분 테이프 가운데 18분30초가 지워진 사실을 시인했다. 닉슨은 1973년 11월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I’m not a crook)라고 주장했지만 그의 지지도는 끝없이 추락했다.
1974년 5월 연방 하원에서 닉슨에 대한 탄핵 청문회가 시작되고 6월 연방 대법원이 모든 테이프를 제출할 것을 명령하자 닉슨은 8월 5일 백악관이 이 사건에 개입했음을 시인하고 전에 이를 부인한 것은 기억력이 나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연방 의회에서의 탄핵이 확실시되자 닉슨은 8월 9일 사임한다.
한국의 최순실 게이트도 언론 보도로 시작됐다. 올 7월 26일 TV 조선은 재벌 기부금으로 세워진 미르 재단과 K스포츠 재단 모금 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보도를 내놨다. 이 때까지만도 이 사건이 대통령의 사임을 불러올 정도의 대형 사건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10월 19일 JTBC가 최순실이 박근혜 연설문 고치기를 좋아했다는 고영태의 증언을 내보내고 24일 최순실이 버리고 갔다는 태블릿에서 대통령 연설문 44개가 발견됐다는 보도를 내놓으면서 사건은 커졌다. 그 뒤 최씨가 대통령의 힘을 업고 기업들로부터 돈을 뜯고 자기 자식을 이대에 부정 입학시켰으며 정부 인사에까지 관여한 정황이 드러났다. 검찰은 최순실에 관한 공소장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사실상 공범으로 지목하고 있다.
박근혜는 사건이 터진 후 지금까지 세 차례의 국민 담화를 했지만 워터게이트 때의 닉슨처럼 거짓말과 자신은 죄가 없다는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첫 담화에서는 청와대 비서진이 갖춰지기 전까지 연설문 작성에 최순실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세번째 담화에서는 자신은 사심없이 국가를 위해 일했으나 주변 사람들이 망쳐놨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겼다.
백번을 양보해서 주변을 잘 챙기지 못해 이런 사태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옳다. 자신의 퇴임 일정을 자신이 정하지 않고 국회로 넘긴 것도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는 의심받기 딱 좋다. 진정으로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면 닉슨처럼 툭 털고 권좌에서 내려오면 그만이다. 다음은 헌법이 정한대로 국무총리가 권한 대행을 맡아 두 달 안에 새 대통령을 선출하면 된다.
야권은 야권대로 당리당략을 따지지 말고 현행법 체제 안에서 최대한 빨리 박근혜의 퇴진과 새 대통령 선출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헌법을 새로 고치자고 하면 중구난방으로 온갖 소리가 나오게 되고 국정 혼란은 더 장기화될 것이다.
워터게이트는 미국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줬지만 대통령도 법 아래 있고 법을 어기면 쫓겨난다는 선례를 확실하게 남겼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를 진일보시키는 역할을 했다. 한국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하루 속히 현명하게 마무리짓고 정치를 업그레이드 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