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숫자로는 다 말하지 못하는 것들

2016-11-23 (수) 08:37:18 김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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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숫자와 데이터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지고 있다. 수학이나 과학뿐만이 아닌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숫자와 데이터가 그 어떤 것보다도 가치있게 생각되고 있다. ‘몇 퍼센트의 사람들이 정치인 누구를 지지하며 몇 퍼센트의 사람들이 실제로 투표를 한다’ 등의 숫자를 통해 정치인들이 선거 캠페인을 진행하고 ‘몇 퍼센트의 사람들이 어떤 병을 앓고 있다’ ‘몇 퍼센트의 사람들이 부당한 일을 경험한다’ 등 사태의 심각성을 그 어떤 말보다도 숫자가 더욱 잘 표현해줄 때도 있다.

데이터가 중요한 만큼 나 또한 데이터를 이용하고 사용하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몇 퍼센트의 한인들이 어떠한 일을 겪고 있다’며 우리 한인들의 어려운 삶을 백마디 말보다 한 숫자로 대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저 숫자나 데이터로 사람들을 설명하기에는 숫자로는 차마 다 말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될 때가 더러 있다. 연구 보조원으로 일했을 때의 일이다.

사람들과 정해진 질문으로 인터뷰를 하고 그 결과를 데이터로 입력을 하는 일이였다. 짧게는 20분 길게는 1시간에 걸쳐 한 사람과 인터뷰를 하다보면 아무리 짧은 시간의 인터뷰라도 그 사람의 성격, 그 사람의 생각, 그 사람의 생활습관, 그 사람의 역사, 그 사람의 소신 등 인터뷰 대상인 그 사람을 사람으로 너무나 잘 알게 되어버리곤 했다.


Yes 혹은 No라고 대답한 그 모든 사람들의 대답 뒤에는 그 사람들이 살아온 수십년간의 역사, 그리고 그 수십년을 통해 만들어진 그 사람들의 성격, 소신, 생각 등이 모두 들어가 있는 각자 너무나 다른 Yes 혹은 No였다.

그렇게 나는 몇 십명을 인터뷰했었는데 사무실로 돌아가 그 모든 인터뷰 결과를 입력할 때에는 너무나 복잡하게 이루어진 대답을 그저 숫자로 0, 1, 0, 1 입력을 하여야만 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사람들의 다양하고 복잡한 그 이야기들이 그저 큰 숫자 하나로 합쳐져 퍼센티지(%)로 계산되는 걸 눈앞에서 지켜보았다.

아직도 38%의 Yes라는 인터뷰 결과 안에는 그 모든 사람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녹아있다는 것에,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다는 것에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숫자와 데이터가 너무나도 중요해진 지금 우리는 숫자와 데이터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사람들의 경험과 소신, 생각을 모두 표현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나 있을까?

<김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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