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들꽃
2016-09-12 (월) 10:08:31
신정은
매월 첫째 화요일엔 치매 가족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 알츠하이머 및 치매가 있는 부모나 동기간, 혹은 배우자를 돌보는 사람들이 모여 당사자가 아니면 도무지 알 수 없을 애환을 서로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는 것인데, 비교적 연배가 아래인 나는 노년을 향하는 혜안을 배우기도 한다. 때로 전문의나 전문가 등을 초대하여 실재적인 조언을 받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SF 한인문화원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 ‘추석’과 맞물려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다.
‘추석’은 2007년부터 SF한인문화원에서 실시해 온 커뮤니티 아웃리치(Community Outreach) 중의 하나로 처음에는 샌프란시스코 카운티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던 것을 2년 전부터 범위를 넓혀 알츠하이머 협회와 함께 치매환자를 찾아다니고 있다. 거동이 가능한 치매 환자들을 대상으로 의학적 접근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화 예술 콘텐츠로 다가가 혜택의 지평을 넓히겠다는 것이 취지인데, K-pop과 애니메이션을 적극 활용하여 제작한 콘텐츠에 참가자들이 쉽게 관심을 가질 수 있어서인지 호응이 좋다.
프리젠테이션을 마치면 주로 공예와 서예 등의 간단한 실습을 하고, 이때 나는 으레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소리내어 참가자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눈인사를 한다. 수양버들같은 잭, 분꽃을 닮은 엘리시아. 그동안의 세월과 질병으로 닳아 헤져 무덤덤한 표정선이지만 낯익은 눈빛과 마주쳐 흔들거리며 반가와할 때 나는 그들이 들꽃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비록 날렵하지 못한 몸매지만 원을 만들어 노랠 부르며 서로에게 기대어 웃는 모습이 마치 야산 중턱에 피어난 들꽃이 바람에 흔들리며 몸을 비벼대는 것처럼 정겨우니 말이다.
들꽃박사 김태정은 평생 우리꽃을 찾아 다니며 며느리 밥풀꽃, 솜다리, 쑥부쟁이 등의 고운 이름을 들꽃에게 찾아주었고, 유안진 선생은 값 매길수 없는 들꽃의 존엄함을 들꽃 언덕에서 알았다고 했다. 오고 가는 길목에서 지천에 피어있는 들꽃이지만 여간해선 눈에 잘 들어 오지 않는다. 들꽃은 몸을 숙여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비로소 이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많은 이가 이름을 알려 하지 않고, 눈여겨보려 하지 않는 동안에도 그들은 들꽃처럼 서로의 몸을 비비며 서로를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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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