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 야자수에는 나이테가 없다. 나이테는 궂은 날씨를 맨 몸으로 견뎌내고, 계절의 순환과 낮밤의 굴곡이 끊임없이 교차하면서 새겨지는 자연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나이테가 없는 나무는 잘 휘어지고 힘이 없어, 결이 촘촘하고 단단한 나이테의 나무라야 좋은 목재가 된다고 한다. 즉, 나이테란 고난을 살아냄으로써 가지게 되는 세월의 흔적인 것이다.
사람의 생을 나무의 나이테와 같이 시각화 한다면 어떻게 표현될까? 저마다 걸어온 길로 고유의 모습을 드러내겠지만, 시련이라는 굴곡진 능선은 너나없이 한자리씩 있을 듯싶다. 이렇게 누구나 맞닥뜨릴 법한 시련은 늘 그렇듯이 갑자기 찾아온다.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시간에 말이다.
그날 나는 2마일 트레일을 걸었고 집에는 염가세일로 산 운동기구가 배달되었으며, 고등어구이와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던 그런 시각에 비보를 고지하는 수화기 저편의 사람으로 무심하게 왔다. 또한, 시련은 사람들의 서늘한 눈매와 함께 온다. 파란곡절(波瀾曲折)에 더해진 매정한 눈길로 등이 시려운데, 더 힘든 것은 그 불편한 눈매를 마주하고 살아내야 하는 세상인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통하여 참을 깨닫게 되고 스스로를 조명하며, 지나간 일이 ‘아! 그래서 그랬구나’ 저절로 겸허하게 될 때, 시련이 단단해져야 할 좋은 목재의 나이테임에 의심이 없다. 어느새 지명(知命)을 훌쩍 넘어선 나이이다.
계획하지 않았던 고난한 삶의 무게를 지탱하며 살아내야 한다는 것, 누군가는 이제 조금씩 쉴 수있는 여유를 도모하고, 일군 것에 자잘한 미소까지도 지어 보일 수 있을 때에, 나는 생의 첫 걸음마를 떼듯이 두려운 마음으로 조심스레 걸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싶다.
비록 꽃길은 아니지만 한 사람에겐 희망이 되고 참의 길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가장 작은 자리지만 큰 사랑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익숙지 않은 도전과 새 길의 연속이겠지만 이만큼 왔고 그렇게 온 것이 소중하고 대견하기 때문이다. 13년만에 다시 여성의창 필진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이 여행이 내게는 고요한 성찰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공감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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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은씨는 Community Organizer로서 한인사회 및 주류사회에서 활동하였으며, 현재 SF 한인문화원장, 육영수 추모동산 건립위원회 문화예술위원장, SF문인협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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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