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상담실로 들어와서 앞에 놓은 의자에 조심스레 앉는다. 지치고 우울한 표정에 어색함이 입혀진다. 어떤 이는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한 얼굴로, 어떤 이는 증오와 분노의 번뜩이는 눈빛으로 처음 만난 상담사의 낯선 얼굴을 어색하게 살핀다. 용기를 내어 상담소 문을 두드린 내담자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된다. 지난 4년반 동안 이 곳에서 일하며 ‘한 사람이 온 세상’임을 깨닫게해준 내게 참으로 소중한 인연들이다.
상담사로 일한다고 말하면 어떤 이들은 내게 묻는다. 한시간에 한명씩 보면 하루에 겨우 7-8명 만나는데, 시간 대비 효율성이 너무 떨어지는거 아니냐고… 비효율적이라고.
한가지 묻고 싶다. 혹시 누군가가 당신과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한시간 동안 아무 판단 없이 오롯이 당신의 이야기를 집중하여 들어준 경험이 있는지… 아니면 당신이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준 적이 있는지… 그렇다면 알 것이다. 그 때 그 사람은 더 이상 연약한 한 인간이 아니라 온전한 한 세상으로 다가옴을. 회복과 치유의 묘약은 바로 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온 세상으로 받아들여질 때임을 매년 500시간이 넘는 상담 시간을 통해서 배웠다.
몇 백명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끔은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실화들을 만나지만, 4년 가까이 신문에 칼럼을 쓰면서도 내담자의 사례를 나누지 않았다. 물론 비밀보장이란 약속도 있지만 상처 입을 용기를 내어 나눈 소중한 삶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그져 신기한 이야기쯤으로 여겨지는게 견딜 수 없이 싫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사람이 소중함을 일깨워준 한 내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간증처럼 나누길 허락해서 이곳에 나눈다.
중학교 때 자신을 차별하는 선생님이 너무 싫어서 ‘죽이고 싶다’고 쓴 낙서로 인해 학교 골방에 갇히고, 결국 퇴학 후 사립학교를 전전하다 끝내 학교를 마칠 수 없었던 한 한인 학생. 경제적으로 어렵던 부모님은 매일 일을 해야했고, 집에 방치된 채 인터넷 중독과 극심한 불안장애와 강박증에 시달리던 아이를 몇몇 친척들이 나서서 돌아가며 자신의 집에서 돌보기 시작했다. 매주 6개월 넘는 상담과 지속적인 멘토가 되준 교회 형, 그리고 1년을 일대일로 성경공부하며 한가족처럼 지낸 선생님.
3-4개월이 지나며 극심한 강박증이 약해지면서 검정고시(GED) 시험을 준비했고, 한달 전 쯤 검정고시에 합격했다고 알려주던 그 아이의 밝은 표정은 처음 상담소에 찾던 같은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그리고 지난 주에 6개월 동안 한 선교단체 훈련에 참석을 위해 해외로 떠났다. 앞으로 자신처럼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꿈을 안고…
한 사람은 결코 한 사람이 아니다. 한 사람은 누군가의 자녀며, 부모며, 형제자매며, 배우자며, 동료며 친구다. 한 사람이 아프거나 가시돋힌 독불장군일 때 식구들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 약 20여명이 그 여파로 아프고 힘들어한다. 그렇기에 한 사람은 단순이 한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 원리를 바꿔서 생각하면 나 한사람이 온전히 치유되고 회복되면, 내 주위의 20여명이 함께 행복해진다. 그렇기에 상담실 안에서 만나는 한 사람은 결코 한 사람이 아니다. 한 청소년이 회복되고 마음이 건강해지면, 본인 뿐 아니라 부모와 친구들, 그리고 미래의 배우자와 자녀들, 그리고 앞으로 일하게 될 직장의 동료와 부하 등 연결된 많은 사람들이 상처와 정신적 피해를 덜 받고 더 행복해지는 공식이 성립된다. 그러므로 내 앞에 앉은 한사람 뒤에 보이지 않는 20명이 함께 마음에 그려진다. 그러니 나는 하루에 7-8명의 내담자를 만나는게 아니라 140-160명을 돕고 있는 것이다.
매일 출근하며 꿈을 꾼다. 비밀이 절대 보장되는 안전한 곳, 판단과 정죄 받지 않는 곳, 외롭고 힘들 때 찾아갈 수 있는 그루터기 같은 곳이 워싱턴가정상담소 이기를. 그리고 우리 모두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counseling@fccgw.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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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 이 심리 상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