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30시각] 철학자로 사는 방법

2016-07-08 (금) 03:19:43 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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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오셨다. 그때 나는 시간이라고 대답했다.

아이들 교육에 열을 올리고 성적을 올리려고 온 학원을 수소문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공부에 관련해서는 나를 온전히 믿으시고 전혀 개입하지 않는 부모님들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나는 내 시간의 100%를 내가 오롯이 관리해야 했다. 그랬기에 아마 정해진 시간표를 따라 학교에 가고 학원을 가고 차려진 밥상을 먹는 친구들보다 시간에 대해 더 예민했으리라.

나에게 있어 시간이라는 개념은 매일 24시간이 있고 낮과 밤이 끝나면 그 다음날 다시 24시간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었다. 달력에 적힌 날짜 혹은 숫자는 무의미해 보였다. 24시간, 48시간, 72시간 등 시간은 계속 누적되는 것이며 그저 긴 삶의 흐름이 있을 뿐이었다. 업무가 많을 때는 나는 내 하루를 36시간으로 만들어 밤을 건너뛰기도 한다.


그러나 하루의 시작과 끝이 아닌 시간의 긴 흐름에 초점이 맞춰지면 막연함이라는 것이 생긴다. 앞으로 살아갈 인생이 참으로 길게 느껴져 압도되는 날도 있다. 특히 지금처럼 회사를 안 다니고 직장을 찾는 시기가 오면 나는 시간의 100%를 내가 다스려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 오는 어떤 두려움이 마음에 둥지를 튼다.

그런데도 위안이 되는 것은, 인간의 능력은 무한하다는 생각이다. 나를 포함해 주변의 많은 사람을 보면 정말 피나게 노력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면서 꼭 자신이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루었다. 환경적인 것은 큰 걸림돌이겠지만, 그것 또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있다. 그래서 그 무엇보다 자신을 믿어야 한다. 자신의 적인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라는 니체의 말처럼 끝없이 흘러가는 삶의 연속성에서 오는 두려움이든, 줄줄이 탈락하는 면접에서 오는 자괴감이든 다 감정이고 생각일 뿐이다.

얼마 전 스즈키 이치로를 인터뷰한 기사를 보았다. “타석에서는 최대한 마음을 비우려고 한다. 냉정하게 방망이만 돌리는 타격 기계가 되는 것이다. 감정이나 몸 상태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되면 온전히 타격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철학자라고 불리는 이유다. 확고한 신념 아래 그는 자신을 끊임없이 공부하고 훈련한다. 또 그는 “나는 그저 특별한 하루 없이 날마다 똑같이 살아가면서 연습처럼 경기하고 연습처럼 경기를 끝낸다. 그렇게 하려고 피나는 훈련을 하고 준비를 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나는 아마 홈런을 날릴 그날을 위해 앞으로 몇 개월간 매일을 똑같이 차분히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내 인생 스물 여섯. 무게도 가늠하기 어려운 도전들을 성공적으로 해내신 한 선배님의 조언대로, 앞으로 10년이 내 인생의 많은 것을 좌지우지할 것이다. 내가 할 일은 그저 오늘을, 주어진 24시간을 가장 지혜롭게 보내는 것이다.

<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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