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학부모에서 부모되기

2016-06-29 (수) 03:20:43 마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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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의 책 중에 이런 문구가 있다. “당신은 학부모인가? 부모인가?” 나는 이 문구를 보자마자 가슴이 찔렸다. 우리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학부모에게서 자랐다. 부모에서 학부모가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데, 나의 경우는 학부모 먼저 거치고 나서야 진정한 부모가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내 옆에는 항상 육아서적이 있었다. 아이의 발달 단계에 관한 책, 아이를 두뇌를 좋게 하는 방법을 소개한 책, 의학서적까지 다양한 책이었다. 그러다 아이가 책에 나온 발달 단계를 따라가지 못하면, 그때부터 아이를 어딘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여 무엇인가 가르치려 했다. 아이는 각자 다른 속도를 가지고 있고, 기질이 다르다는 것을 몰랐고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 아이는 내가 정한 발달 속도와 기질에 맞춰줘야 하는 것이 운명이었다.

육아서적은 우리에게 유용한 정보를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독이 되기도 한다. 내게는 아이의 IQ가 6세 이전에 완성된다는 주장, 그래서 조기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그랬다. 겁이 많아 무엇이든 조심하는 큰 아이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 방법이었다. 지금 둘째 아이에게는 주변에서 걱정하리 만치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때가 되면 배우겠지’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큰 아이는 학교 가기 전부터 그 난리를 쳤는지 후회가 된다. 두 아이를 키우고 나서야 모든 아이들은 자신의 ‘때’가 있고 그 ‘때’를 거스르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준비하는 시간을 인정하고 ‘때’를 기다려 주는 것이라는 것도.


한국 엄마들은 아이를 칭찬할 때 “아이가 무척 빠르네요”라는 말을 자주하고, 또 그 말을 듣고 싶어한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미국 엄마들이 우리 아이에게 자주 쓰는 “She is so sweet”의 이미를 되새겨 본다. 뺏긴다 생각하지 말고 양보를 잘 한다 여겨주고 자기 주장을 못한다 야단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아이라고 칭찬해 주려고 한다.

우리는 올해 방학을 맞아 한국에 오게 되었다. 한국에 오기 전 나는 아이를 학교 청강생으로 보낼지, 미술 학원을 보낼지, 수영 강습을 시킬지 고민했었다. 하지만 이제 킨더에 다니는 아이가 여유롭게 방학을 즐길 날이 얼마나 될지 생각하며 이번 방학은 진정한 방학으로 지내기로 했다. 나도 학부모가 되는 시기를 조금 늦추고 부모로 느긋한 방학을 즐기고 싶다.

<마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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