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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Roots), 18세기 미국으로 팔려간 노예… 생존·자유 위한 투쟁사

2016-06-24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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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7년 ABC-TV 8부작

▶ 미니시리즈 붐 일으켜

뿌리(Roots), 18세기 미국으로 팔려간 노예… 생존·자유 위한 투쟁사

미니시리즈 ‘뿌리’. 노예선에 갇힌 쿤타 킨테(가운데).

작가 알렉스 헤일리의 소설‘뿌리’(Roots)는 18세기 노예상인들에 의해 붙잡혀 미국으로 팔려간 서부 아프리카 감비아의 만딘카족 젊은 전사 쿤타 킨테와 그의 후손들의 가혹한 환경 하의 생존의 이야기이자 자유를 위한 저항과 투쟁사이다. 헤일리의 자신의 뿌리를 찾는 가족사요 미 노예제도에 대한 기록이기도 한데 베스트셀러이자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 소설은 지난 1977년 ABC-TV에 의해 8부작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져 8일간 계속해 방영되면서 빅히트, 미 TV 기록 멜로드라마의 형태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 왔다. 당시 1억4,000만여명이 시리즈를 시청했고 마지막 회는 미 인구의 절반 이상이 시청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겼다. 시리즈가 방영되는 저녁이면 상점들이 문을 닫을 정도로 열화와 같은 반응을 받았었다. 시리즈는 골든 글로브 최우수 TV 시리즈(드라마 부문)상과 9개의 에미상을 비롯해 피바디상을 받았다. ‘뿌리’는 미 TV에 미니시리즈 붐을 일으키면서 이어 ‘가시나무 새’ ‘쇼군’ 및 ‘전쟁의 바람’과 같은 작품들이 나왔다.

‘뿌리’는 쿤타 킨테(르바 버튼) 자신과 그의 손자 치킨 조지를 비롯한 여러 세대의 후손들의 미 남북전쟁을 거쳐 장구한 세월 동안의 노예제도 하에서의 치열한 생존투쟁사요 가족사로 당시 미국인들에게 깊은 감동과 함께 강력한 영향을 남긴 작품이다.


시리즈에는 기라성 같은 흑인과 백인 배우들이 나왔다. 루이스 가셋 주니어, 시슬리 타이슨, 벤 베렌, 레즐리 유감스, 랄프 웨이트, 빅 모로, 마야 안젤루, 에드워드 애스너, 로이드 브리지스, 샌디 던칸, 린다 데이 조지, 론 그린, 모지즈 건, 조지 해밀턴, 벌 아이브스, 덕 매클루어, 이안 맥쉐인, 리처드 라운트리 그리고 O.J. 심슨 등이 출연했다.

‘뿌리: 완전판 오리지널 시리즈’(Roots: The Complete Original Series)가 방영 40주년을 기념해 워너 브라더스 홈 엔터테인먼트(WBHE)에 의해 새로 프린트돼 블루-레이로 나왔다. 시리즈가 방영돼 미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남긴지 40년이 지났지만 미국에는 여전히 인종차별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아직도 ‘흑인의 생명도 귀중하다’라는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여야 하는 요즘 시의에 맞는 중요하고 다시 한 번 인종차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귀중한 작품이다.

나는 소설 ‘뿌리’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지녔다. 책이 나왔을 당시 나는 서울의 한국일보 외신부에서 근무를 했는데 그 때 모 출판사에서 소설의 한국어 번역을 우리 외신부에 부탁해 왔다. 그래서 외신부 기자들이 부장의 지시에 따라 소설을 여러 부분으로 찢어 나눠 부리나케 번역을 해 책이 나왔다. 번역료로 해적판 번역 동지들과 함께 막걸리를 사 먹었는데 당시만 해도 대한민국은 저작권 같은 것은 무시해 그런 번역이 가능했었다.

그런데 ‘뿌리’가 블루-레이로 나오기 직전인 지난 5월30일부터 4일간(매일 2시간씩) 역시 8시간짜리 신판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져 케이블 TV 히스토리(History) 채널을 통해 방영돼 화제가 됐었다. 쿤타 킨테(말라키 커비)와 치킨 조지(르제-진 페이지)와 피들러(포레스트 위타커)의 대를 거친 이야기가 수려한 화면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원작에서 쿤타 킨테 역을 맡은 르바 버튼이 카메오로 나오고 로렌스 피시번이 마지막에 헤일리로 나온다. 이밖에도 안나 파퀸과 매튜 굿 및 래퍼 팁 ‘T.I.’ 해리스 및 조나산 리스 마이어스 등이 나온다.

옛 ‘뿌리’를 못 본 젊은 세대를 위한 작품이라고 하겠는데 역사적으로 원작보다 더 정확하고 잔인성도 보다 가혹하나 재미나 충격적인 면에선 원작만 못했다. 기시감을 버릴 수가 없어 감동이나 영향이 무디어진 느낌이다.

우연의 일치랄까 원작 ‘뿌리’의 블루-레이 출시와 시리즈 신판 방영과 함께 요즘 영화와 TV가 흑인 노예문제를 자주 다루고 있다. 이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탄 ‘12년간의 노예생활’의 영향이라고도 볼 수 있다.


먼저 WGN 채널의 시리즈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가 좋은 반응 속에 최근 시즌 첫 회를 마쳤다. 이 시리즈는 미 남부 곳곳에 산재한 비밀 은신처를 이용해 남부에서 동부로 탈출하는 노예들의 처절한 탈출기로 일종의 노예들의 반격이라고 하겠다. 연기와 내용이 모두 훌륭한 작품이다.

이어 오는 10월에는 선댄스 영화제에서 절찬을 받은 ‘국가의 탄생’(The Birth of a Nation)이 개봉된다. 1831년 버지니아주에서 봉기를 일으킨 흑인 노예 냇 터너의 탄압에 대한 저항의 실화로 흑인 감독 네이트 파커가 연출하고 주연도 한다.

그리고 24일에 개봉되는 실화 ‘자유국가 존스’(Free State of Jones)도 이런 종류의 영화에 속한다. 1862년 남북전쟁에 출전했다가 생존한 미시시피주의 가난한 농부 뉴턴 나잇(매튜 매코너헤이)이 농부들과 노예들을 규합해 존스카운티의 남부군에 대항해 싸우는 얘기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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