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미국의 문화 - 기부 사회

2016-06-15 (수) 04:17:25 마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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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살면서 ‘이것은 나쁘다, 이것은 좋다’라고 하는 것이 몇 가지 있겠지만, 대표적인 것 하나씩만 이야기하자면 전자는 물건을 헤푸게 쓰는 것이고 후자는 기부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나쁜 것은 빨리 물든다고 나도 손님을 초대해서 일회용 물건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고, 쓰레기 양은 점점 늘어간다. 그런데 좋은 문화에는 물들지 않는다.

얼마전 학교 디스트릭(District)에서 편지가 왔다. 올해 도네이션(Donation) 금액을 달성하지 못하였다는 내용이었다. 이 도네이션은 아이들을 위한 체육, 음악, 과학 등 특별 교육을 위한 선생님을 모셔 오는데 사용된다. 우리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아이의 개인적인 교육은 빚을 내서라도 시키고 싶은데 좋은 학교를 만드는 데는 ‘우리 형편에 무슨 기부냐’다. 마침 남편은 그 편지를 보고 기부를 하겠다며 인터넷을 연다. 아이가 아직 킨더니 올해는 건너뛰고 내년부터 하자고 남편을 설득해 보았다. 남편은 내년에는 둘째아이가 유치원을 다니게 되니 더 여유가 없을 것이라 한다. 나는 속으로 여유가 없으면 내년에도 건너뛰면 되지라고 생각한다.

이 동네에 살고 있는 한 엄마의 말이 공짜로 교육을 받고 있으니 기부하는 것이 아깝지 않고, 기부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커뮤니티가 발전하게 되니 결국 우리를 위한 것이라 한다. 하지만 내게는 커뮤니티의 발전은 먼 이야기이고 내 자식을 위한 혜택이 먼저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나라가 ‘사교육’에 그렇게 목메는 나라가 되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나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다면, 공교육의 발전은 뒷전이고 사교육에 목메는 사회가 될 것이 아닌가? 돈이 많은 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해서 더 좋은 학교에 갈 수 있다며 불공평한 사회의 문제점을 떠들던 나도 내것을 나누어 공정하게 모든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에는 인색한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남쪽에 벌링게임이라는 작고 아름다운 도시가 있다. 그 마을은 벌링게임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땅을 국가에 기부를 하여 만들어졌다. 반면 소송까지 해가며 자신의 땅이라 주장하는 친일파 자손의 일을 생각하니 마음이 씁쓸하다. 과연 내가 내년에 기꺼운 마음으로 기부를 할 수 있을까?

<마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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