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오월

2016-05-24 (화) 02:21:44 남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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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은 가정의 달이다. 오월에는 어린이날이 있고, 어버이날이 있고, 그리고 스승의 날이 있다. 거기다 미국엔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까지 있다. 주위에 존경하고 사랑해야 할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날들로 가득차 있다. 그뿐인가? 오월의 축제, 메이퀸 등등 오월은 여러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상징한다. 난 어렸을 때부터 일년 열두 달 중 오월을 제일 좋아했다. 어렸을 땐 어린이날이 있어 좋았고 엄마가 되어선 어버이날이 있어 뿌듯했고, 선생님이 된 후엔 스승의날이 있고, 어버이날이 있어 보람차고 뿌듯하다.

그런 행복한 나의 오월은 20대 때 어느날 우연히 보게 된 사진 몇 장을 시작으로 마냥 좋게만 느꼈던 벗꽃 만발한 오월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슬프게 늘어지는 버드나무 가지 무성한 오월이 되어 해마다 늘어진다. 1980년 5월 광주의 모습을 담은 그 참혹한 사진 몇 장은 내 머리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군인들이 시민을 무리져서 때리고 찌르는 사진 몇 장은 엘에이서 살고 있던 당시 4.29 폭동 때 미국 뉴스에서 수없이 보았던 로드니 킹이 경찰들에게 둘러쌓여 맞던 그 모습 이상으로 처참했다. 살기 좋은 미국인 줄만 알았던 이 나라가 아직도 인종차별로 후진국의 모습을 보이는데 실망했을 무렵, 1980년 5학년 때의 5월 어느 날, 평화롭고 봄햇살로 나른한 내 기억의 서울의 모습은 어두움을 감추려는 양의 탈이었다는 것을 난 깨달았다. 나의 20대 때의 응답하라 1980년은 그렇게 허상으로 배신으로 얼룩져 해마다 이맘 때면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다시 오월이다. 가정의 달이다. 그리고 난 이젠 40대다. 과연 지금의 오월은 안녕한 것일까? 한국에서도 여기 미국에서도 여전히 시끌거린다. 200명이나 인명피해를 일으킨 가습기 살균제 문제로 시끌, 대놓고 다른 인종을 무시하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시끌, 내 20대 때의 오월과 별반 차이가 없다. 여전히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와 존중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미국이나 한국이나 별로 나아진 게 없는 것 같다. 여전히 마음이 무겁다. 그래서 내 자녀에게 그리고 학생들에게 인성을 제일 중요하게 가르치자 다짐해본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월은 날 설레게 한다. 어딘가에서 새싹처럼 희망이 피어오를 것 같은 막연함에 난 다시 오월이 설렌다. 오월의 햇살은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답다.

<남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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