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간의 바다] 길 위에서

2016-01-10 (일) 09:01:06 어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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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새 언덕 위를 서성이던 바람이 그 무언가 억눌렸던 분노와 고통의 기억이 있었던가 나무들을 사납게 흔들어대며 흐느낀다. 대지는 그 눈물로 흠뻑 젖은 채 그저 가만히 바라볼 뿐인데 나는 저 바람의 기억을 찾아 그 아무데라도 가고싶어진다.

겨우 어제 순백의 설경으로부터 돌아왔음에도 ... 아직도 가슴엔 눈발이 흩날리고, 순결한 바람이 머물던 산길이, 백사장 대신 백설원이 되어버린 호숫가에 찍힌 무수한 발자욱들이 선명한데... 그 눈 밭위에 누워 눈에 가득 들어오는 회색 하늘을 온통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차가운 대지의 기운이 내 몸속을 통과하여 온갖 허욕과 불만의 찌꺼기들을 씻어가도록 모처럼의 자유함에 몸을 맡기고, 일상으로 뛰어드는 일이 그다지 두렵지 않고 텅 비워나간 건전지가 채워진 듯한, 뭐랄까, 차분하면서도 무언가 흡족한 느낌으로 돌아왔었다.

그래, 나아가는거야! 쉼 없이. 그런데 하루만에 저 비와 바람이 나를 또다시 불러내어 아직 할 말이 남았다고, 바람이 불어가고 불어 왔던 그 많은 길들의 기억을 말해주겠노라 한다.


또 다른 새해가 되고 속절없이 지나간 시간을 따라 미지의 시간들이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별로 색다를 것도 굉장한 일도 없지만 하나하나 쌓여 내 인생이 되어줄 시간들이고보니 매 시간 새로운 기분이다.

지금 서있는 이 길 위에서 잠시 뒤를 돌아, 지나온 아득히도 먼 길을 본다. 모든 것이 뭉뚱그려져 대체 어느 것이 기쁨이었고 어느 것이 슬픔이었는지 감정이 탈색되어버린 순간들이 거기 있다.

고통과 분노와 모멸의 순간들이 더러는 아직도 그 길 위에서 울고있긴 해도 토닥여주면 금새 조용해진다.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힘든 시기들이 그 언제가 되었든 어떤 식으로든 끝나주었고 그로하여 내가 저 길의 시작에서 원했던 대부분을 잃었으나 이제 와 평온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안위와 평온보다는 내 안에 더 넓은 이해의 지평을 가지게 되었고 수 많은 편견들의 속박에서 제법 자유함을 얻을 수 있게 되었음이 진정 다행일 것이다. 그것들은 단순히 행복하다는 개념보다는 보다 높이 비상하여 그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눈, 더불어 더 높은 곳을 염원하는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어서 때때로 땅에 속박되고 결박되어지는 처지에 처할지라도 그 눈과 희망으로 자유로와질 수 있는 힘인 것이다.

수시로 찾아오는 결박을 푸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게 될 때까지 삶은 이렇게 이어지리라.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행복은 불행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불행은 행복했기 때문에 얻어진 것, 그러니 행은 단순히 행이 아니요 불행 또한 단지 불행만이 아닌 것이다. 이 것이 저 것이고 저 것이 이 것이기도 한 이 삶을 온통 받아들이며 모든 구분과 판단과 경계 앞에서 조심스럽고 겸허하고 현명해지길 스스로에게 염원해본다.

한참을 지나온 길 위에 서있다 문득 창 밖을 내다보니 비바람에 지난날 떨어졌던 나뭇잎들이 앞마당 여기저기 수북하다. 한 때 여리고 순수했던 새 순일적이 있었고, 한창 푸르름을 뽐내었던 시절이 있었고, 가장 아름다운 색을 온통 내뿜었을 때도 있었으며, 이제 흙이 되어 대지로 스며들 저 낙엽들이 아름다운 것은 떨어질 준비를 할 때의 그 황홀한 빛깔 때문만이 아니요, 몸무게를 한껏 가벼이 하고 떨어지는, 그 떨어짐 때문일게다.

<어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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