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석<음악박사>
1708년경에 이탈리아의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는 피아노를 처음 제작했다. 옛날 악기 하프시코드의 겉모습은 그대로 두고 안에 내용물만 바꿔놓은 것이다. 현대의 피아노와 비교하면 건반수도 훨씬 적었고 기능이야 비교도 되지 않았다.
바흐도 이 악기를 처음보고 시큰둥했다고 하니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볼 것도 없었을 것이다. 제작자, 크리스토포리는 피아노를 몇 대 만들어 놓고 팔리지가 않자 곧 원래 자신의 전공인 하프시코드 제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시대가 바로크에서 고전음악시대로 바뀌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모차르트는 1777년에 개량된 66개의 건반을 가진 피아노를 처음보고, 당장 집에 있는 하프시코드를 팔아버렸다.
베토벤은 그 당시 가장 유명한 피아노 회사 ‘브로우드 앤선즈’의 악기 협찬을 받고, 주옥같은 피아노 소나타를 써낸다. 그러나 이 두 명의 대가도 피아노의 역량을 완전히 드러냈다고는 볼 수 없다. 1800년대, 산업혁명의 시대는 피아노의 다른 두 대가를 탄생시킨다. 산업혁명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이루었고, 그 영향으로 피아노는 거의 지금의 형태로 발전했다. 건반수도 75개에서 82개로 늘어났다.(현재의 피아노는 88개). 또한 새롭게 등장한 신진 부호세력인 부르주아들은 저마다 피아노를 사고, 그들의 부인과 딸들은 피아노를 배웠다.
그뿐 아니라 연주장과 살롱에서 연주회도 개최했다. 뭔가 뽐내고 싶었나보다. 그러니 당연히 거기에 맞는 곡이 필요하고 연주자도 필요했다. 시대가 천재를 요구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 천재들이 바로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는 쇼팽과 ‘피아노의 왕’ 리스트이다.
리스트의 별명 피아노의 왕은 어쩐지 좀 우습다. 그런데 쇼팽의 별명 ‘피아노의 시인’은 기가 막히게 그와 그의 음악을 잘 설명한다. 그의 주옥같은 곡들을 들어보면 정말 시 그자체이다. 말년에 썼다는 녹턴을 들어보면, 독특하고 세련된 멜로디, 그리고 달콤하고 유연한 화성은 그냥 음악에 푹 빠져들게 한다. 사실 그의 곡은 테크닉 적으로 상당히 어렵다.
리스트의 어려움이 밖으로 보인다면 쇼팽은 안에 숨어 있다고나 할까? 그런데 듣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느껴지지 않게 한다. 편하고 친숙하고 쉽게 들린다. 그 당시 그는 별로 평가 받지 못했다. 심한 화성의 변화와 불협화음은 그가 아마추어 작곡자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했고, 이상하게 쉽지 않은 테크닉은 비예술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후대의 그는 진정한 낭만 작곡자 그리고 피아노의 음악을 더욱 완성한 작곡자로 인정받았다. 그는 평생 세 가지만 사랑했다고 한다. 그의 악기 피아노, 조국 폴란드, 그리고 여인 조르드 상드... 그의 음악에는 그게 보이고 들린다. 쇼팽은 그의 음악처럼 조용하고 화려하지 않은 짧은 삶을 살다 갔다.
그 반면 리스트는 쇼팽과는 완전히 대조되는 음악가이다. 그의 음악은 화려하고 웅장하다. 마치 테크닉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하긴 당시에 최고 인기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를 보고 자신도 그와 같은 피아니스트가 될 것을 결심했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아무튼 날마다 10시간씩에 연습을 이겨내고 최고의 기교를 가진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인기는 말도 못했다고 한다. 지금의 연예인들을 향한 팬클럽의 시초가 그가 아닌가 싶다. 연주회 때 잘 나간다는 귀부인들이 리스트를 만나기 위해 난리를 쳤고 연주가 끝나면 그를 쫓아다니기 바빴다.
리스트는 그들 앞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도도하고 멋있는 피아니스가 되었다. 그의 음악은 열정적이고 도전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려하고 빠른 속도의 연주를 지향했다. 그의 피아노곡과 연주는 마치 오케스트라 같은 효과를 냈다고 한다.
이 두 명의 피아노의 대가들로 하여 피아노는 더욱 발전하고, 음악분야의 더욱 중요한 악기로 자리매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