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평선] 왜 계엄이어야 했을까

2025-08-20 (수) 12:00:00 이영창 / 한국일보 논설위원
크게 작게
국정 전반에 걸친 전직 대통령 부인의 범죄 혐의를 보자니 ‘도대체 왜 계엄을 했을까’ 그 길었던 의문에 실마리가 풀리는 것도 같다. 화려한 혐의 목록은 복수 내부자들이 윤석열 정권의 ‘최고 존엄’을 김건희 여사로 꼽았던 이유를 보여준다. ‘윤 전 대통령은 V1(VIP 1호)이고 김건희 여사는 V0’라는 시쳇말이 이젠 팩트로 보일 정도로, 김 여사에겐 거침이 없었다. 그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아니라 ‘아무것도 참지 않은 사람’이었다.

■ 윤 전 대통령이 밝힌 계엄의 이유는 ‘구국의 결단’이다. 지난해 12월 3일 담화문에서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제왕’이라고까지 불리는 대통령의 권능을 생각하면, 단지 그 이유만으로 이렇게까지 위험한 도박을 할 필요는 없었다. 진짜 반국가 세력은 국가정보원과 수사기관의 통상 기능만으로도 충분히 척결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굳이 계엄까지 나아간 것은 ‘계엄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 단서는 당시 서울경찰청장의 증언이다. 계엄 직전 대통령을 만나 ‘이유는 가정사’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우린 그게 명태균 의혹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명태균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임기 후 아내가 수사받아야 한다는 걸, 검사 출신 대통령은 잘 알았을 것이다. 아내의 구치소행을 막으려면 권력을 놓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게다가 영부인 뇌물은 대통령의 죄(경제공동체)라는 점에서, 결국 계엄은 자신을 위한 가장 이기적 선택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조은석 특별검사는 수사를 시작하며 “사초 쓰는 자세로 직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란범 단죄뿐 아니라, 계엄의 심연을 파헤치는 사명도 특검에 있다. 대통령 부부의 이권 장사를 숨기기 위한 계엄이 아닌가 하는 의심에 특검은 답을 내놓아야 한다. 계엄 블랙박스가 만천하에 공개되고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야, 윤석열 부부를 숙주 삼은 극우의 준동을 잠재울 수 있고 먼 훗날 혹시라도 튀어나올 ‘윤석열 재평가’ 수작을 막을 수 있다.

<이영창 / 한국일보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